오늘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날
2010.12.20 20:29
오늘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날
한 처음에 하나님은 ‘완전함’을 디자인하셨다. 그 디자인에 의하여 존재계가 출현하고 인간 역시 완전한 디자인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세계, 자연의 세계는 언제나 완전 그 자체이다. 인간의 에고에서 나타나는 욕심과 비교의 틀을 내려놓고 바라보면 이 세계는 완전 그자체임을 곧 바로 알 수 있다. 자연은 똑 같은 것이 없다. 구르는 돌멩이도 다 각각이듯이 일체가 다르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완전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 속에서 자연은 성장과 변화의 과정을 밟아간다. 그 이치를 예수는 밀알의 과정을 통하여 가르쳐 주셨다. 모든 곡식들이 자기 완성을 향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인간 역시 이 지구에 생명체로서 주어진 존재의 디자인에 맞게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디자인은 육체(Carnal)의 단계에서 본성(Natural)의 단계로, 그리고 영성(Spiritual)의 단계에서 신성(Divine)의 단계로 이행해가는 과정이다. 물리학자들조차 인간은 물질의 존재가 아니라 빛의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데 인간은 아직도 물질의 영역에서 헤매고 있다. 예수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 빛은 신성의 빛을 은유하고 있다.
우리는 빛의 세계,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 이 세계를 바라보던 영혼이었다. 그 영혼은 인간의 살 속 내려와 있다가 한 송이 꽃이 피어나듯이 영혼의 개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세계는 한마디로 시궁창이 되어 버렸다. 육체의 속성인 원초적 본능(자기 보전, 사회적, 성적본능) 충족만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가르치는 세상으로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구에서 천상의 기억과 함께 ‘나’를 잃어버렸다. 저녁이 되면 아기들이 아무 이유 없이 기를 쓰며 울어대는 것은 떠나온 천상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떠나온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은 육체의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고통이고 죄악인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존재의 목적과 가치와 의미를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집나간 둘째 아들이 돼지와 함께 먹을 것을 다투는 것처럼 곤궁해졌고 비참해졌다.
지금 세상에 나와 있는 에니어그램은 육체의 단계를 다루는 에니어그램이다. 그러나 에니어그램은 위에서 말한 바 처럼 ‘몸 나’를 나로 아는 삶에서 벗어나 고치 짓고 나비되는 신성의 길을 안내하는 지혜이다. ‘몸 나’는 머리 나와 가슴 나, 그리고 배(장)의 나로 나누는데 그 중심에 얼나로서의 ‘나’(I AM)가 있다. 에니어그램의 기초과정에서 다루어져야할 주제는 세 개의 나에 대한 통합적 중심(Centering)과 양 날개의 조화(Balance)이다. 그리고 방향(Direction)이다.
예수가 왜 그리스도인가?하는 물음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거쳐야할 과정이다. 또한 그 과정은 인간의식의 네 단계를 경험해가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예수는 모세의 전통을 기반으로 자신을 ‘나는 나다’ (에고 에이미. I AM) 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우주적 그리스도 의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요한은 로고스, 빛, 생명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수 많은 영적 스승들이 말한 표현들을 종합해보면 예수는 인간이 지구에서 성취해야할 모든 과정을 마스터하고 그 길을 보여 주셨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인류의 길이고 생명이고 그리스도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경이로운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인간 안에 가능성으로만 내재되어 있던 신의 완전한 디자인을 해독하게 된 것이다. 잃어버린 인간으로서의 명예와 특권을 되찾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에고의 영역에서 경험한 많은 상처들을 안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빛과 어듬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전쟁의 위협은 아직도 한반도에 자리하고 있고 바쁘게 돌아가는 삶의 굴레와 무게에 짓눌려 자칫하면 아무런 개념 없이 삶이 흘러 가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우리는 지금 여기, 오늘을 잘 살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오늘의 의미를 중요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말로 오늘은 오---! 하는 감탄이 늘 이어지는 것이라고도 하는 데 바울은 오늘을 구원의 날이며 용서의 날이라고 한다(고후 6:2). 용서는 자기 수용(Accepted)의 뜻이다. 오늘은 하나님이 나를 받아 들이 듯이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날이다. 내가 지구에 사는 동안 단 한번 유일하게 존재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날이 오늘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존재들 역시 오늘 처음 보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몸속에서는 다 채널의 진동이 울려 퍼지고 있다. 그것은 존재의 나팔소리이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그 소리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여기’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고 영원에 잇대어진 ‘오늘’을 은혜롭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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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신명기28장을 체코에서 만납니다
니의 영혼육에 다림줄로 내려옵니다
꼼짝못하고 다림줄을 바라보니
체코 문지방 밑에서 생명수 솟는소리 들려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