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490149
  • Today : 1546
  • Yesterday : 1063



히브리서 7멜기세덱과 같이 영원한 대사제 그리스도

 

숨 이병창


히브리서 51-10에서 언급했던 멜기세덱이 7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예수는 다윗의 후손인 유다 지파인데 어찌 레위 지파가 할 수 있는 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언급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근거로 너는 멜기세덱과 같이 영원한 제사장이다라는 시편 110:4를 인용하고 있다. 멜기세덱은 모세 이전의 아브라함 시대의 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배경에는 예수의 제사장으로서의 입장은 모세의 율법과 레위의 제사장 직책보다 더 근원적이고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통 유대인들에게 이 주장은 매우 당혹스러웠으리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창세기에 등장하는 사례를 통해 제사장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상인 아브라함 시대에도 있었음을 제시한다. 멜기세덱은 평화라고 하는 뜻을 가진 살렘의 왕이었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그는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연합한 왕들이 소돔에 살고 있던 조카 롯과 가족들을 모두 끌고 갔다는 말을 듣고 사병 318명을 이끌고 다메섹까지 추격하여 밤을 틈타 기습하여 모두 되찾아 왔다. 다섯 왕의 연합군을 여러 패로 나누어 기습한 것을 보면 전략가로서의 아브라함을 다시 보게 한다.

승전하고 오는 아브라함을 마중 나갔던 멜기세덱은 그를 축복하였고(14:19), 아브라함은 자기 가진 전부에서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주었다. 이 이야기를 배경으로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은 혈통으로서 이어지는 한계를 초월하여 영원하다고 주장한다(7:3). 레위 지파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서 십일조를 받지만 멜기세덱은 아브라함과 같은 혈통이 아니지만 십일조를 받았다. 따라서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더욱 강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났을 때 레위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때 레위는 조상인 아브라함의 유전자 속에 있었다. 그리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보다도 윗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축복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레위는 아브라함을 통해 십일조를 바쳤다고 말한다. 이 표현은 인간은 시공을 초월하여 조상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유대인의 사고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약적이고 과장처럼 보이기는 하나 조상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면 후손인 레위도 십일조를 바친 것과 다름없다고 보는 것이다.

 

@ 완전성을 이루지 못하는 레위의 제사장직

 

레위의 제사장직은 율법의 핵심적 상징이다. 율법으로는 인간의 양심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데 한계가 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예수를 제사장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예수가 새로운 멜기세덱의 제사장 반열이 되셨다면 율법의 제사장 역할에도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예수는 육적인 혈통에 의한 규정을 벗어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명이 임재하는 제사장이 되셨고 짐승 잡아 바치는 제사를 폐지하고, 인간을 완성에서 완전의 길(6)로 안내하지 못하는 율법을 폐지하였다. 이제 인류는 새로운 율법인 복음을 받게 되고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라는 다리를 통과하여 직접 하나님께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율법이 무력하고 무익했기 때문에 폐기 되었다면(18) 그리스도의 제사장직도 영원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점에 대해 저자는 너는 영원한 제사장이다’(7:21)하신 하나님의 맹세가 보증이 될 것이라 말씀하고 있다. 과거에는 제사가 진행되기 위해서 많은 제사장이 필요했다.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었기 때문에 사제 직무가 존속되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제사장들이 대를 이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들어 올려져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가 드린 한 번의 제사로 이제 동물을 잡아 바치는 행위는 끝이 나게 되었다. 저자는 거룩하고 순수하고 순결하신 예수와 동물의 제사가 어떻게 차원이 다른 것인지 말하고 있다.

 

@ 불멸의 힘을 이어받아

 

구약시대에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숫양 한 마리를 고운 곡식 가루와 기름과 포도주와 함께 바쳤다(29:38-40).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은 자신의 속죄를 위한 황소 한 마리를 바치고 그다음 백성들을 위한 제물로 숫 염소 한 마리를 바쳤다(레위 16:11-19). 또한 약점을 지닌 제사장들과 진정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와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제사장들이 완전히 이룰 수 없었던 인간의 속죄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셨다.

 

그분이 제사장이 되신 것은 인간의 율법의 규정을 따라 되신 것이 아니고 불멸의 생명의 힘을 따라 되신 것입니다.’(7:16)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불멸의 힘을 이어받는 것이다. 힘은 능력이다. 우리의 삶이 독수리 날개처럼 비상하기 위해서 예수를 일으켜 세운 불멸의 불꽃이 타올라야 한다. 그 힘만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알껍질을 부술 수 있다. 영혼의 불이 꺼지면 살과 뼈만 남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