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의 편지 / 예 감
2013.09.05 13:57
장애인 갤러리를 목적으로 시내에다 작은 공간을 마련했을 때,
어떤 이들은 계산도 안 나오는 무모한 일이라고 염려하기도 했지만
나는 지금도 순간마다 시내에 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호수공원을 끼고 있는 아파트와 상가 촌인데도 이 지역에는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시골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이른 아침부터 호수공원에는 갖가지 성인병으로 장애를 가지고
날마다 걷기운동을 하는 어르신들이 가득하고,
외에도 지체장애를 비롯하여 지적장애인,
발달장애인들을 흔하게 만나게 됩니다.
근처에 있는 신광모자원(미혼모, 한 부모가정, 다문화가정의 생활관)에서는
20,30대의 젊은 엄마들이 찾아와 몸과 마음에 받은 상처를 이야기로 나누고,
신앙의 교제와 함께 나는 그들을 위하여 차를 끓이면서
세상이 온통 상처와 아픔으로 찌들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서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이지만 그들에게 원두커피를 끓여주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정성스런 마음들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어느 날, 그들이 고등어구이와 된장찌개를 만들어 오면
나는 밥을 지어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지적장애를 가지고 딸 하나와 함께 살아가는 엄마는
늘 활짝 웃으면서 친정에서 가져왔다는 들기름을
찌그러진 작은 pt병에 두어 숟갈, 호박 1/4쪽, 참외 2개 등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물건 자체를 두고 값을 정한다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거기에는 주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깃들었기에 소중하지요.
아가씨처럼 작고 여린 몸매로 3명의 아이를 혼자 기르는
30대 초반의 젊은 엄마는 무더위 속에서도 우리 ‘공간’ 주변의
잡초를 뽑아주기도 합니다.
고맙게도 그녀는 나에게 ‘목사님 엄마’라 부르기도 하고,
가까운 곳에서 자기들의 기둥이 되어주어 든든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네들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건 세상의 어떤 자리보다도
내게는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무엇이기에 이곳에서까지 이처럼
기쁜 일을 감당하게 하시고, 소중한 체험을 하며 살게 하시는 지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렇게 때로는 지치고 힘든 그들의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럽게 늘 웃는 모습이, 그리고
우울증과 정서불안에 시달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게 가슴에 들어옵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만나는 이들과 또 끈끈하고
무서운(?) 정으로 이어질 것 같은 예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커피도 처음에는 그저 무심하게 끓였습니다.
그러다가 보석처럼 빨갛고 투명하게 우러나는 그 빛깔이
신비롭게 눈에 들어오면서 그것은 연륜을 따라 조금씩 메말라가는
내 삶에 작은 기쁨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순간까지 내게 다가오는 모든 이들이
신비롭고 소중할 것 같습니다.
물을 내려 존재 자체를 빛나게 하는 이 계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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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눈물로 적신 흙을 개어
아픔으로 사는 사람들의 생채기가 아물게 이끌어 주시는 가온님
가을햇살처럼 맑은 편지가 은혜가 되고 생명이 되고 의미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