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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의 편지 / 자 존 감

2013.06.18 11:07

가온 조회 수:15989

주위에서 자존감이 약한 이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 중 하나가

나로서는 그들이 열등감을 가질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몸에 예쁘고 잘 생긴 외모까지 갖춘 이들이 늘 쉽게 상처를 받고

움츠러드는 모습은 보는 이마저도 안타깝게 합니다.

 

어쩌면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가 파편의 흔적처럼 얼룩지고

그 얼룩이 삶 전체에 번져가면서 그들의 의식이 그처럼 위축되는 것이 아닐까요?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늘 벌겋게 환부를 드러내고 있어

사소한 자극에도 움찔 충격을 받으며 새로운 상처가 되어

피를 흘리는 연쇄작용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신체장애로 인해 내게는 사실 자존감이란 말조차

무관하게 여기며 살아왔지만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고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전에 알고 있던 세속적인 가치관과 인생관이 새로워졌습니다.

 

누더기를 걸치고 통속에 살면서도 왕 앞에서 조차 당당하게

일조권을 주장했던 디오게네스처럼 나도 햇빛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존재라는

자존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낀 유리창을 닦음으로

본연의 투명함으로 되돌아가 볼 수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 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사도 바울이

가장 고상한 복음 가졌을 때 그가 버린 것은 무엇입니까?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족속임을 버렸습니다. 바리새인임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가말리엘의 문하생임을율법적으로 흠이 없음을, 로마의 시민권 등

세상적인 우월감을 버렸을 뿐만이 아니라 그는 나아가

그것을 배설물같이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열등한 외모와 작은 키와 안짱다리와 어눌한 말솜씨와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는 질병까지도 버림으로

세속적인 열등감과 비굴함에서조차 해방된 자유를 누렸습니다.(3:)

 

그것이야말로 바울이 소유하게 된 진정한 자존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버린 것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상처를 싸안고 장애나 외모로 인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며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지배를 받으며 전전긍긍한다면

우리가 가졌다는 복음은 힘을 잃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무엇으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시내인 이곳에서도 어디선가 풀씨가 날아와 공간출입문 앞에

잡초 싹이 돋아나고 있을 때,  

그것을 말끔하게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몇 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바로 그 잡초들이 흰색과 노란색과 보라색으로

예쁘게 꽃을 피워내는 눈물겹도록 애잔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니 모두가 불필요하다고 여기고

뽑아내야 할 존재로 여김을 받으면서

시멘트나 돌무더기의 척박한 여건에서도

그들은 개의치 않고 열심히 꽃을 피워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분 안에서 살고 있다는 우리가

이러한 한포기 잡초가 가진 자존감도 갖지 못하고 있다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억압받고 짓눌리고 뽑혀지는 들풀도

꽃으로 피워내는 이 찬연한 생명의 땅에서 - .

 

 사진_1~1.JPG사진_1~2.JPG

 우리 '공간' 입구에 저절로 핀 들꽃이랍니다. 와서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