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근간을 형성시킨 고대백제의 근초고왕이 있다.
그는 백마강 유역을 외국과의 해상무역의 출발점으로 만들어 활발한 대외활동을 시작하였다. 시기는 어찌 보면 혜초스님보다, 장보고보다도 더 빠른 4세기~6세기에 이미 해외무역항로의 터전을 만든 왕이다. 백제의 전성기를 이룬 것은 물론이고, 백제라는 국가체제를 갖춘 시기이다.
당시 말로는 백마강을 구드래항이라고 했는데, 이 구드래항에서 일본으로 중국으로 해외무역을 했을 뿐만 아니라 백제는 인도까지도 진출했던 해양강국이라는 것은 실로 놀라운 세계인적 사고방식이다.
이로 인해 일본의 문화를 만든 계기가 되고 문화의 전파구실을 해왔다는 증거다.
우리역사의 대륙성과 해양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며 이로써 우리역사의 본모습은 위로는 광활한 대륙성과 아래로는 해양성이라는 것이다. 결코 갇혀있는 반도국이 아니다. 우리역사의 무대가 넓은 대륙이었다. 해양성이라면 우리선조가 넓은 해양을 개척해가면서 우리의 광역으로 만들었다. 우리의 세계화 정신이 워낙 깃들어 있었다는 것에 듣기만 해도 자부심이 생기고 놀랍다.
그리고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 고려 왕건이 있다.
코리아 라고 부르는 이름이 고려 때부터 비롯되었듯이 대외적으로 상당히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나라였다. 해상왕국답게 막강한 해상세력을 상징하는 군함도 80명이 승선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속도 4.5미터의 위용을 자랑했다. 국제무역항 벽란도는 수도 개경에서 30킬로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어 주변국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넘나드는 동양의 용광로 역할을 했다. 역동적이고 활기찬 시대였다.
특히 왕건시대의 개성은 국제무역도시로 너무나 유명해졌는데, 이때 이주민인구비율이 전체인구의 11%였다.
지금 2013년 현재 이주민인구비율이 전 국민의 2.6% 남짓 되고 있는데 지금 다문화라고 난리이지 않는가.
11%라는 비율의 감도가 어느 정도냐면, 지금 전 국민의 딱 11%가 해외이민으로 나간 우리의 동포숫자이다.
5000만 인구 중에 800만이 해외이민으로 나간 숫자이다. 어마어마한 비율이다.
또한 고려시대 최고의 협상전문가 서희를 소개하고 싶다.
8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겠다는 거란의 위협에 대해 당당히 적장, 거란 쪽으로 들어가 협상을 하고 전쟁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압록강 쪽의 강동 6주를 쌓아 요새를 만들어 강력 대비까지 하였다. 그는 협상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국가적 비전과 사회적 합의 등이 있었고 당시의 글로벌인식, 세계정세 등에 폭과 시야가 넓지 않으면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다.
나를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편협하지 않는 균형 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바로 이러한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고 세종대왕이다. 당시 황제의 나라 형님의 나라 명나라의 모든 것에 빌붙어 살아야 할 때에 독자적으로 우리문화의 모든 것을 챙기신 분이다. 각 분야에서 문화르네상스.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분이 세종대왕이다. 조선을 업그레이드시킨 분이다. 신분제도가 막강했던 시대에 인재를 발탁하는 데에 있어서는 노비출신도 마다하지 않았다. 농업. 과학. 기술. 문자. 학문. 음악. 등 이 모든 것들을 자기의 업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리사욕을 위해서도 아니라 백성의 삶을 진작시키기 위한 따뜻한 마음이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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