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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의 편지 / 빈 자리

2013.07.04 20:05

가온 조회 수:11409

언젠가는 오리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근처 아파트에서 홀로 생활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고관절과 허리통증으로

보행이 불가능해지면서 D시에 있는 노인전문병원으로 가시게 된 일은

아주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습니다.

 

고급스럽고 편한 시설에서 어머니는 만족하셨지만

늘 불효만 해 온 딸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85세가 되신 어머니의 아파트는 가구나 그릇마다 먼지가 없고,

바닥에 있는 걸레도 눈처럼 희었으며 어머니의 일상(日常)

일기장에 차곡차곡 정리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당신의 기를 쏟아 존재하셨기에

그 손길이 배인 모든 것들은 그분의 분신처럼 눈물겹습니다.

 

 

내가 한 고장에서 태어나 이렇게 늙어가기까지

어머니는 늘 가까운 곳에 계셨습니다.

 

만나지 못할 때라도 근처에 사신다는 사실만으로

가깝게 느껴왔는데 어느 날 홀연히 자리를 비우고 떠나셨습니다.

나는 받아들일 준비도 못했는데...

 

나는 이제껏 어머니를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자세로 살아왔으며

오히려 참견이나 걱정하시는 걸 싫어했건만

오늘, 내 발걸음은 왜 이렇게 허당을 밟듯이 휘청거릴까요?

 

유년시절부터 늘 노닐던 내 정서의 강가에서

무심코 밟고 다니던 징검다리의 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막막함이랄까...

 

어머니 앞에서는 나는 늘 허물진 모습이었습니다.

 

 

효도를 하고 싶을 때는 간()이라도 뺄 것처럼 설치다가도

짜증이 나면 함부로 틱틱거리며 그야말로

제멋대로 행동했던 허물로 늘 얼룩져 있습니다.

 

이제는 허리를 펴지도 못하시고, 걷지도 못하는 어머니의 존재가

보이지 않게 내 삶의 뿌리로 지탱해주었음을

이 나이가 되도록 깨닫지 못했던 소치가 회한의 눈물이 됩니다.

어쩌면 그동안 흘리신 눈물을 나에게 물려주고

갖가지 염려까지도 묻어두고 가셨는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자식 된 내 인간의 감성이, 정서가 이러할진대

문득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이 떠났을 때의 사울왕의 상태는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삼상16:14)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오만했던 사울이

하나님이 떠나신 후에 영적으로 얼마나 망가져버렸으면

신접(神接)한 자에게까지 도움을 구했을까요?

 

우리도 신앙생활을 타성적으로, 오만함으로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은총이 떠나는 날,

영적으로 무서운 공황상태에 빠지게 될 지도 모릅니다.

 

너무 늦기 전에 우리는 은혜 안에 있음을

깨달아야 할 일입니다.

 

은혜 안에 있을 때,

마냥 지속되리라는 어리석은 착각으로 안일하게 여기지 말 일입니다.

 

은혜 안에 있을 때,

허물과 부족함을 자각하며 겸손하게 감사할 일입니다.

 

어리석은 나는 이제야 뒤늦게 어머니의 빈자리를 돌아봅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너무 빠른 세월,

그 세월을 재촉하듯 오늘도 바람이 붑니다.

 

엄마와~1.JPG 

2년 전만해도 어머니는 호수공원을 함께 산책할 정도로 건강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