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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영혼을 다치게 하지 말라

2009.09.22 23:03

물님 조회 수:6698

   네 영혼을 다치게 하지 말라


  고립, 소외, 무의미라고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에 대한 관심에서 생겨난 심리치료 방법으로 실존치료가 있다. 일어난 문제를 분석해 들어가는 합리적 과정보다는 내담자의 있는 그대로의 경험과 치료자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실존치료는 인간의 가슴에 초점을 두는 상담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상담에서 말하는 자유의 요소는 책임.소망. 결정.의지를 들고 있다.


자신의 문제를 유전자, 운명, 부모, 운, 환경.... 때문이라고 핑계대는 사람은 책임감이 없는사람이다. 아담이 자신의 과오에 대하여 여자를 핑계 대고 또 여자는 뱀을 핑계 대는 식으로 책임 전가하는 상황에서는 변화의 동기가 생성될 수 없다.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인간은 자기 초월의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에니어그램 역시 내 생각과 느낌과 행동에 대하여 책임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삶의 혁명이 시작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에 따라 삶의 내용이 결정되는 존재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길을 가기 마련이다. 내가 그리워하는 대상이 서울에 있다면 나는 서울로 가는 길을 가게 될 것이 아닌가. 소망은 인간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원천이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은 무기력에 빠지게 되고 삶의 창조적 감각이 죽어 버리게 된다. 현대인들의 비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무엇인가 결정한다는 것은 선택하고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현실에 대한 용기있는 직면이다. 이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선택할 수 있는 힘은 의지의 강화와 직결된다. 의지가 박약한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선택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유인은 하느님이 자신의 운명 대본을 고쳐 쓸 수 있는 펜을 손에 쥐어 주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실존치료 심리학자 부겐탈은 인간의 참된 해방은 인간의 내적 고향을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 우리가 지니고 있는 근심과 곤경의 원인 중 많은 부분이 우리가 내적 고향인 주관적 경험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탓”이라고 말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지만 ‘나’라고 하는 존재가 빠져버린 얼빠진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의 문제는 해결 될 수 없다. 인간이 진실로 창조적인 삶에 참여하는 통로는 내가 나에게로 돌아갈 때 열리게 된다. 돌아온 탕자가 자신에게 돌아가는 근본 경험을 했듯이 인간에게는 내가 나에게로 돌아가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 경험이 없을 때 생존은 있지만 진정한 삶은 없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해방자가 되신 것은 그 분을 통해 우리 각자가 자신 안의 고향을 찾게 되고 현상에 매여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깨닫게 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는 무망한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는 자신이 환상을 쫒아가는 몽유병자 상태에 있었음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보시기에 아름답다 하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온 맹인이었음을, 삶의 감각이 죽어버린 나병환자였음을 확인하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추구하는 삶을 추구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의식하고 살아가는,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다는 것은 인간의 지복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신적 실재에 접하는 인간의 특성이다. 깨어있는 자만이 타인과 이 세상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일체의 조건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치품을 갖기 위해서, 자기 과시를 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들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못해 건강을 잃기도 한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고 명예를 잃으면 크게 잃고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다는 말이 있다. 사실 자신에게 모진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건강을 해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수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마가 8:36)고 말씀 했다. 유한한 땅 위에서 얻고자 하는 소유물과 세상의 권위와 권력을 송두리째 갖는다 해도 목숨이 사라지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본문의 목숨은 ‘영원한 생명’(조에)이나 영혼(프뉴마)도 아닌 육체적 생명 또는 현재의 생명을 의미한다. 인간의 현재 생명도 이 세상의 그 어떤 조건들보다도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영원한 생명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공인된 라틴어 성서인 불가타 역에는 ‘제 목숨을 잃으면’을 ‘자기 영혼에 해를 끼치면’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나’를 잃어버리고 내 안의 하느님을 잃어버리고 세상을 향해서만 촉수를 내미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에 해를 끼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홀로 앉아서 자기 자신과 있지 못하고, 누군가로 부터 인정 받기 위해서 노심초사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강박 증세는 내가 나의 영혼을 해치는 일이다. 성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내 영혼을 해치면서까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없다고 말씀한다. 이 교훈을 받아들일 때 삶의 조화와 상승이 일어나게 된다는 지혜를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