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스도의 나누어진 몸
2009.11.09 23:52
그리스도의 나누어진 몸 - 나
토마스 아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The Imitation ofChrist)'라는 명저를 남겼다. 그가 통찰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숭배만 할 뿐 본 받으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행동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대상으로써 섬기고 있는 현실이었다. 우리는 오늘 여기에서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길을 가도록 보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를 숭배만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숭배는 기적을 낳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는 기적을 낳는다. 우리는 거듭남의 기적 속에서 그분을 본받아야 한다.
숭배만 하는 자는 종의 단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을 예수와 분리된 존재로 여긴다. 예수 앞에서 또는 자기 자신에게 자신을 비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과연 이것이 정당한 것인가?
“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요한 15:14-15)
기독교인들이 저지르는 과오중의 하나는 자신을 함부로 무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이다. 자신을 무시하는 자는 이웃을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자이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가 어찌 그 누구인들 무시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내 생명의 중심이라는 인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의식이며 삶의 태도를 뜻한다. 이 상징이 성만찬이다. 그리스도는 한 개의 빵을 쪼개어 ‘이는 너희를 위하여 쪼갠 나의 몸’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 26:26. 루가 22:19. 고전 11:24)
그리스도의 쪼개진 몸이 내 몸에 들어 올 때 나는 신적 현존과 하나로 연결된다. 그것은 생명의 관계이며 영속적인 친교의 지속이다. 하나의 빵이 나뉘어져 모든 이들의 빵이 되는 생명의 연결고리 선 상에 내(Iam)가 있다. 그 하나의 빵인 그리스도에 대하여 요한은 이렇게 기록했다.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 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 (요한 1:2-4)
예수의 몸은 2천년 전 지구의 시공 속에 계셨지만 우리 모두를 위하여 개별화되신 보편적 그리스도는 항상 있어 왔다는 것을 요한복음서는 말하고 있다. 그분은 생명의 빛으로서 항상 계셔 왔다.
빛과 에너지에 대하여 아인슈타인은 에너지와 질량의 등식에서 물질은 엄청난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고 했다. 작은 우라늄의 덩어리에서 핵폭탄이 나오는 이치를 그는 말한 것이다. 그는 빛이 각개의 입자, 즉 광자로 이루어졌다는 추론으로 빛의 이론에 혁명을 가져왔다. 에너지는 새로 생기거나 소멸될 수 없고 단지 형태만 변한다고 하는 것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이 법칙은 우주의 변화와 창조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예수는 두려움이라는 어둠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 오셔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을 비출수 있는 영혼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등을 각 사람에게 주셨다는 복음을 전하셨다. 나에게서 영혼의 등불이 빛나는 것처럼 그대들도 나처럼 그리 할 수 있다고 선언하셨다.
베다니의 언덕에서 예수는 너희가 내가 그리스도임을 믿는다면 내가 한 일을 너희도 하며 그보다 더한 일도 너희가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몸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이며 포도나무로 비유하자면 그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와 같은 존재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된 사람들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나누어진 몸을 필요로 한다. 내가 용서가 필요할 때 나에게는 끝 까지 용서하신 그리스도의 용서의 몸이 필요하다. 내가 능력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능력을 주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내가 부활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부활의 몸으로 나를 채워 주실 것이다. 나에게 열정이 필요할 때면 그것은 나에게 열정의 몸이다. 바로 이 그리스도의 몸을 각자의 현실 속에서 경험한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로마의 위협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다.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을 초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나누어진 몸으로서의 몸이 될 때 나는 목적을 가진 몸이 된다. 사명을 자각한 나가 된다. 종이 아닌 그리스도의 친구가 된다. 이것만이 에니어그램이 말하는 성격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인격 (Personality)을 초월하게 한다. 이 전제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지상에서 힘쓰고 있는 모든 노력도 시간 낭비일 뿐이다.
하나의 촛불이 밝혀지면 그 불꽃에 수많은 촛불을 이어서 불붙일 수 있다. 내 안에서 영혼의 불이 타오를 수 있도록 생명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계심에 감사할 뿐이다. (mo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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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존엄성를 가진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씀에
깊이 공감하고 기운을 차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