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2021.08.11 05:06
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천둥번개가 한 번 치고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바람이 바뀌었다
풀벌레 소리가 가늘어지고
새의 노래가 한 옥타브 높아지고
짙푸르던 나뭇잎도 엷어지고
바위 틈의 돌단풍이 붉어지고
다랑논의 벼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검붉게 익어오고
산국화가 꽃망울을 올리고
하늘 구름이 투명해지고
입추가 오는 아침 길에서
가늘어진 눈빛으로 먼 그대를 바라본다
조용히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무더운 열기와 무거운 공기와
얼굴을 가리고 말들을 삼키고
마스크 씌워져 무감하고 무디어진
내 생의 날들이여
이제 바람이 바뀌어 불고
맑아지고 섬세해진 나의 감각으로
거짓과 진실을
강제와 자율을
예리하게 식별해 가야겠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바뀌었다
하늘이 높아졌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03 | 까미유 끌로델의 詩 | 구인회 | 2020.05.10 | 951 |
402 | 이스탄불의 어린 사제 | 물님 | 2019.12.18 | 955 |
401 | 밤에 길을 잃으면 -쟝 폴렝 | 물님 | 2021.01.29 | 957 |
400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도도 | 2020.10.28 | 960 |
399 |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 박노해 | 물님 | 2020.11.17 | 963 |
398 | 내 인생의 책 | 물님 | 2020.08.05 | 964 |
397 | 날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박노해 | 물님 | 2020.06.30 | 966 |
396 | 행복 - Hermann Hesse | 물님 | 2019.12.07 | 972 |
395 | 매월당 김시습 | 물님 | 2021.01.19 | 972 |
394 | 가면 갈수록 | 물님 | 2020.01.15 | 9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