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341533
  • Today : 1258
  • Yesterday : 1501


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2021.08.11 05:06

물님 조회 수:1805

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천둥번개가 한 번 치고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바람이 바뀌었다 

 

      풀벌레 소리가 가늘어지고

      새의 노래가 한 옥타브 높아지고

      짙푸르던 나뭇잎도 엷어지고

      바위 틈의 돌단풍이 붉어지고 

 

      다랑논의 벼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검붉게 익어오고

      산국화가 꽃망울을 올리고

      하늘 구름이 투명해지고 

 

      입추가 오는 아침 길에서

      가늘어진 눈빛으로 먼 그대를 바라본다

      조용히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무더운 열기와 무거운 공기와

      얼굴을 가리고 말들을 삼키고

      마스크 씌워져 무감하고 무디어진

      내 생의 날들이여 

 

      이제 바람이 바뀌어 불고

      맑아지고 섬세해진 나의 감각으로

      거짓과 진실을

      강제와 자율을

      예리하게 식별해 가야겠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바뀌었다

      하늘이 높아졌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 날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박노해 물님 2020.06.30 1287
12 물님 2020.09.05 1282
11 가을 노래 - 이해인 물님 2017.11.02 1282
10 도도 2019.12.19 1280
9 이스탄불의 어린 사제 물님 2019.12.18 1278
8 유언장 -박노해 물님 2020.12.30 1276
7 헤르만 헤세 - 무상 물님 2021.03.18 1274
6 밤에 길을 잃으면 -쟝 폴렝 물님 2021.01.29 1271
5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물님 2020.09.09 1269
4 매월당 김시습 물님 2021.01.19 1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