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로 정평이 나있는 고구려인 온달 장군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건너온 왕족의 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이것이 옳으냐 아니냐를 떠나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서역인과 고구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의 자녀로 그를 국제적 인물로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지역인데, 당시 강국이라 불렸던 큰 나라였다. 강국은 13세기 몽골제국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실크로드의 교역 무대였다.
이 지역은 아시아 대륙의 중앙에 위치해 사방으로 길이 열려 있고, 주변이 평탄해 이동이 유리했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강국 사람들이 외국으로 교역을 나갈 때는 상인뿐 아니라 자체 호위무사, 책임자 등이 한 집단이 되어, 그 규모가 작게는 수백 명부터 많게는 수천 명에 달했다.
동서 문명의 교통 루트가 된 실크로드를 개척하는 데 강국 사람들이 선봉 역할을 한 것이다.
이 같은 지정학적 요인은 비즈니스를 강조했던 강국의 문화와 어울려 당시 고구려와의 국제 교류를 활발하게 했던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생겨났는데
강국인은 모두 장사를 잘하며, 사내아이가 5세가 되면 문자를 익혔고, 장사를 가르쳐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고 돼 있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강국 사람들이 교역을 위해 머나먼 고구려로 가는 것은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고 온달의 아버지도 장사를 위해 고구려에 방문한 강국의 상인일 가능성이 높다.
당나라 책인 통전, 자치통감. 위서. 북사의 강구전. 구당서. 신당서 전당문 등에 기록이 있는데. 이런 고서에는 사마르칸트 왕의 성은 온(溫) 씨'라고 기록한 부분에 주목할만하다.
그렇다면 온달은 현대의 다문화가정 자녀이다.
온달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유일한 온 씨이다.
우리나라 온 씨 계보의 시조가 된 셈이다.
그런데 중국 정사인 구당서 강국전에 따르면 "한대 강거라는 지역에 월씨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 나라에서 나온 온씨성을 가진 사람이 강국의 왕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강국과 고구려의 교역이 빈번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온달이 사마르칸트 왕족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학설이다.
삼국사기 온달전에는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 때 사람이다.
그의 얼굴은 멍청하게 생겨서 남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나, 속마음은 순박하였다.
집이 몹시 가난해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했다.
다 떨어진 옷과 해진 신으로 거리를 왕래하였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바보 온달이라고 하였다."
온달은 오늘날로 치면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이민족의 자녀로, 고구려 육군 지휘관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고구려는 귀천이 분명한 사회다.
고구려인을 최고로 치고, 그다음으로 말갈인을 쳤다.
가장 신분이 낮았던 계급은 이방인이었다.
온달이 바보로 불린 것은 실제로 지능이 낮은 바보가 아니라,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왕따 취급을 받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 넷향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