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348131
  • Today : 792
  • Yesterday : 934


봄밤 - 권혁웅

2012.09.20 13:40

물님 조회 수:2389

                      봄         밤

 

                                                                               권혁웅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저 캄캄한 혹은 편안함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管)이다

이쪽 저쪽으로 몰려다니는 동안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

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

현세로 돌아갈 패스포트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 있다

다시 직립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다시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봄밤이 거느린 슬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3 이기인- 소녀의 꽃무뉘혁명 [1] 물님 2012.01.13 2321
302 정지용,「별똥이 떨어진 곳」 물님 2012.07.01 2321
301 폼 잡지 말고 [1] 하늘꽃 2011.06.02 2322
300 행복해진다는 것 [1] 운영자 2008.12.04 2325
299 모든 것을 사랑에 걸어라 / Rumi 구인회 2012.10.12 2325
298 나비 (제비꽃님) [1] 고결 2012.07.05 2326
297 찬양 [6] 하늘꽃 2008.09.25 2327
296 배달 [1] 물님 2009.03.12 2334
295 거룩한 바보처럼 물님 2016.12.22 2337
294 설 밑 무주시장 / 이중묵 이중묵 2009.03.03 2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