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첫째 주 하나님의 포도밭 – 지구
2021.01.03 22:09
마태 21:28-46 , 2021년 첫째 주
하나님의 포도밭 – 지구
이스라엘 민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유대 지도자들의 위선과 불의를 폭로하는 비유가 연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앞 단락(23-27)에서 등장했던 권위 논쟁, 28-32의 두 아들의 비유, 33-46의 악한 농부의 비유 모두 사악한 유대 지도자들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폭로해 주고 있다.
‘한 사람’으로 비유된 하나님은 두 아들을 이스라엘(세상)로 보냈다. 맏아들인 유대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순종하는 듯했지만 온갖 종교적 특권과 기득권의 단물만 빨고 있을 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다. 둘 째 아들로 비유되는 세리와 창녀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며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예수는 세리와 창녀들이 유대 지도자들 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31)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세리와 창녀만도 못한 존재로 말씀하는 예수에게 큰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하였을 것이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예수는 이 비유의 서두에서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묻고 있다. 이렇게 질문하신 의도를 오늘의 현실에 적용한다면 십자가 붙인 교회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예수는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삶 속에서 하늘의 뜻을 실천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마 7:21-23. 약 2: 14-26).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고 하는 말은 예수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말로 둔갑하였다.
예배당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가장 잘 순종하는 것처럼 떠들지만 정작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는 자들은 버림받게 될 것이다. 한 번도 걸인이나 어려운 사람, 성탄절에 볼 수 있는 구세군 냄비에 헌금한 적이 없다면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마태복음 25장에 등장하는 최후 심판의 기준은 일상의 삶 속에서 소리 없이 사람을 살리는 일에 헌신했던 사람들과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과시했던 사람들로 나뉘어 지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교회가 힘을 잃어버리고 사회로부터 욕을 먹고 있는 것은 교회가 자기들의 의에 갇히고 교회 밖의 현실에 대해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천국 갈 것이라고 하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의 본문은 말씀해 주고 있다.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지도자들에 의해 눈이 먼 민중들에게 예수는 그 실상을 보여 주면서 묻고 있다. 과연 너희 생각은 어떻냐?고.
우리는 하나님의 포도밭인 지구에 보내어진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를 보내 주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들이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이 시대의 그리스도로 보냄을 받았다. 이 자각 없이 교회 안의 어떤 직분이 신앙의 전부인 양 착각한다면 교회는 자신의 책임으로 부터 도피하는 자들의 도피성이 되고 말 것이다.
악한 농부의 비유
두 아들의 비유는 유대 교권주의자들의 불순종을 지적했다면 악한 농부의 비유는 불순종을 넘어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종교지도자들의 악행을 고발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였을 뿐만 아니라 포도원 주인의 아들로 비유된 예수까지 죽였다. 종교 지도자들이 의로운 자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일에 앞장 선 결과로 인해 하나님 나라의 축복은 이방인들에게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 비유는 이사야 5장의 ‘포도밭의 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살아있는 나무에게 가뭄의 비는 단비가 될 수 있지만 죽은 나무에게는 더욱 빨리 썩게하는 요인이 된다. 심판과 축복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마찬가지로 영혼이 강팍한 자에게 복음은 미련한 것처럼 보이고 그 결과는 자신을 향한 심판이 되지만, 복음을 은혜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구원의 모퉁이 돌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생명을 거부한 자들은 그 거부 자체가 심판이 된다. 그 심판은 ‘돌 위에 떨어지는 자’와 ‘돌에 의해 맞을 자’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전 자는 예수를 정치적 메시아로 오해하여 잔뜩 기대했다가 실망하여 떠난 자들이고 후 자는 적극적으로 예수를 대적한 자들이다. 또 전자는 당시의 일반적인 유대인들과 오늘의 불신자들이라면 후자는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과 예수를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영적 목표를 가진 다는 것
유대 지도자들의 행태는 모든 사악한 것들의 힘이 발생하는 에고의 부정적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악마적 행태의 뿌리와 같은 에고의 힘이 다스리는 차원의 세계는 영성과 신성으로 깨어나지 못한 현실이다. 시기와 질투, 비판과 모욕, 증오와 폭력, 기만과 도둑질, 저주와 심판 등은 인간이 에고의 욕망에 놀아날 때 발생하는 것들이다. 에고가 인생의 판을 지배할 때 저급한 의식 에너지는 부정적인 독기를 내뿜게 되고 인간의 무한 가능성을 조이는 감옥과 사슬이 된다.
에고의 욕구는 개인적인 자기만족과 생존을 위한 욕구로써 인간의 성장 단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다. 에고의 욕구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고 일방적인 자기 욕구 충족만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의 삶은 균형을 잃고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위험하다.
성인이 전해준 인간 존재를 둘러싼 생명의 이치를 가르치고 실천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에고의 욕구에 무지한 채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더욱 위험하다. 왜냐하면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 않고 세상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에고는 물질 차원의 욕망 속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조이며 살아가는 죄인으로서의 삶을 의미한다. 죄는 존재의 의식 차원으로 이해해야 하지 단순한 윤리적 의미로만 한정할 수 없다. 교회는 애벌레가 나비되는 영혼의 부화장이어야 한다. 에고의 알껍질을 털고 나와 신성의 하늘을 날아오르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지구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학습 또는 영적 여행의 목적은 에고의 속박에서 벗어나 영성과 신성의식으로의 성장을 이루어내는 일이다. 에고의 들포도가 아닌 향기로운 포도가 되는 일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밥그릇 크기에 있지 않고 영적으로 고양되는 데서 도달하게 된다. 그 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식으로서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다.
고치에서 깨어나지 않는 한 애벌레는 자신의 하늘을 날아오를 수 없다. 그리되면 인간으로서의 존귀함은 잠재적 가능성으로만 그치게 될 뿐이다.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거듭나지 않으면, 즉 에고의 이기심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알 길이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지구에서 영원의 하늘을 날아갈 수 있는 거룩한 날개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인생은 한갓 흙덩어리로 허무하게 끝나고 말 것이다. 금년 새해, 각자의 하늘로 비상하는 2021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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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날개로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하며~~~말씀 잘 듣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