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2021.08.11 05:06
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천둥번개가 한 번 치고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바람이 바뀌었다
풀벌레 소리가 가늘어지고
새의 노래가 한 옥타브 높아지고
짙푸르던 나뭇잎도 엷어지고
바위 틈의 돌단풍이 붉어지고
다랑논의 벼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검붉게 익어오고
산국화가 꽃망울을 올리고
하늘 구름이 투명해지고
입추가 오는 아침 길에서
가늘어진 눈빛으로 먼 그대를 바라본다
조용히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무더운 열기와 무거운 공기와
얼굴을 가리고 말들을 삼키고
마스크 씌워져 무감하고 무디어진
내 생의 날들이여
이제 바람이 바뀌어 불고
맑아지고 섬세해진 나의 감각으로
거짓과 진실을
강제와 자율을
예리하게 식별해 가야겠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바뀌었다
하늘이 높아졌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33 | 문태준 - 급체 | 물님 | 2015.06.14 | 1666 |
332 | 낯선 곳에서 살아보기 | 물님 | 2015.05.19 | 1743 |
331 | 세월이 가면 | 물님 | 2015.02.20 | 1732 |
330 | 순암 안정복의 시 | 물님 | 2015.02.17 | 1762 |
329 | 담쟁이 | 물님 | 2014.05.13 | 2459 |
328 | 페르샤 시인의 글 | 물님 | 2014.05.02 | 2839 |
327 | 봄은 울면서 온다 | 도도 | 2014.03.25 | 1893 |
326 | 램프와 빵 | 물님 | 2014.02.10 | 2517 |
325 | 나무학교 | 물님 | 2013.11.27 | 2396 |
324 | 느을 당신이 있네요. [1] | 솟는 샘 | 2013.11.06 | 2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