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2021.08.11 05:06
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천둥번개가 한 번 치고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바람이 바뀌었다
풀벌레 소리가 가늘어지고
새의 노래가 한 옥타브 높아지고
짙푸르던 나뭇잎도 엷어지고
바위 틈의 돌단풍이 붉어지고
다랑논의 벼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검붉게 익어오고
산국화가 꽃망울을 올리고
하늘 구름이 투명해지고
입추가 오는 아침 길에서
가늘어진 눈빛으로 먼 그대를 바라본다
조용히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무더운 열기와 무거운 공기와
얼굴을 가리고 말들을 삼키고
마스크 씌워져 무감하고 무디어진
내 생의 날들이여
이제 바람이 바뀌어 불고
맑아지고 섬세해진 나의 감각으로
거짓과 진실을
강제와 자율을
예리하게 식별해 가야겠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바뀌었다
하늘이 높아졌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3 | 물님! 나는 천개의 바람 (들어 보세요) [1] | 하늘꽃 | 2010.03.06 | 3219 |
222 | 배달 [1] | 물님 | 2009.03.12 | 3223 |
221 | 나는 배웠다 / 샤를르 드 푸코 [1] | 구인회 | 2010.07.27 | 3231 |
220 | 섬진강 / 김용택 | 구인회 | 2010.02.18 | 3235 |
219 | 차안의 핸드폰 [3] | 하늘꽃 | 2009.01.13 | 3236 |
218 | 김종삼, 「라산스카」 | 물님 | 2012.07.24 | 3241 |
217 | 보내소서~힘 되도록~ [2] | 하늘꽃 | 2008.06.06 | 3247 |
216 | 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 물님 | 2012.10.09 | 3248 |
215 | 추우니 함께 가자 - 박노해 | 물님 | 2016.02.02 | 3248 |
214 | 벼를 읽다 [1] | 하늘꽃 | 2007.01.30 | 32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