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대통령
2009.05.13 22:36
중심이 잡히지 않은 사람이 나라의 중심에 있을 때
세상이 얼마나 천박해지고 혼란 해 질 수 있는가를
목도하는 시대에
신동엽의 시를 다시 읽는다.
석양 대통령을 꿈꾼다.
물
散文詩(산문시) <1>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鑛夫(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莊子(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知性(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思索(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大統領(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신동엽, 1968년>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63 | 당신은 | 물님 | 2009.06.01 | 5912 |
162 | 님의 침묵 [1] | 물님 | 2009.05.29 | 5850 |
161 | 평화의 춤 [1] | 물님 | 2009.05.18 | 5605 |
160 | 사막을 여행하는 물고기 [2] | 물님 | 2009.05.15 | 6125 |
» | 석양 대통령 | 물님 | 2009.05.13 | 6048 |
158 | 초파일에 [2] | 도도 | 2009.05.02 | 6147 |
157 | 시론 | 물님 | 2009.04.16 | 5815 |
156 | 독일 발도로프학교 아침 낭송의 시 | 물님 | 2009.04.16 | 6161 |
155 | 아침에 하는 생각 | 물님 | 2009.04.10 | 5830 |
154 | 고향집 오늘밤 / 이중묵 | 이중묵 | 2009.04.06 | 5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