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2021.08.11 05:06
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천둥번개가 한 번 치고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바람이 바뀌었다
풀벌레 소리가 가늘어지고
새의 노래가 한 옥타브 높아지고
짙푸르던 나뭇잎도 엷어지고
바위 틈의 돌단풍이 붉어지고
다랑논의 벼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검붉게 익어오고
산국화가 꽃망울을 올리고
하늘 구름이 투명해지고
입추가 오는 아침 길에서
가늘어진 눈빛으로 먼 그대를 바라본다
조용히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무더운 열기와 무거운 공기와
얼굴을 가리고 말들을 삼키고
마스크 씌워져 무감하고 무디어진
내 생의 날들이여
이제 바람이 바뀌어 불고
맑아지고 섬세해진 나의 감각으로
거짓과 진실을
강제와 자율을
예리하게 식별해 가야겠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바뀌었다
하늘이 높아졌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43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물님 | 2016.03.08 | 1471 |
342 | 행복 | 요새 | 2010.07.20 | 1474 |
341 | 곳감 맛 귤 맛 [1] | 물님 | 2011.11.08 | 1477 |
340 | 물.1 [3] | 요새 | 2010.07.22 | 1479 |
339 | 전화 -마종기 시인 | 물님 | 2012.03.26 | 1483 |
338 | 멀리 가는 물 [1] | 물님 | 2011.05.24 | 1484 |
337 | 밥이 하늘입니다 | 물님 | 2010.11.29 | 1490 |
336 | 세상의 등뼈 | 물님 | 2011.06.13 | 1490 |
335 | 雨期 [1] | 물님 | 2011.07.29 | 1491 |
334 | '손짓사랑' 창간시 | 도도 | 2009.02.03 | 14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