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352745
  • Today : 592
  • Yesterday : 988


봄밤 - 권혁웅

2012.09.20 13:40

물님 조회 수:2641

                      봄         밤

 

                                                                               권혁웅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저 캄캄한 혹은 편안함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管)이다

이쪽 저쪽으로 몰려다니는 동안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

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

현세로 돌아갈 패스포트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 있다

다시 직립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다시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봄밤이 거느린 슬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3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2] 구인회 2013.09.18 3106
302 마지막 향기 [2] 만나 2011.03.16 3078
301 sahaja님의 '불재'를 읽다가... [3] 포도주 2008.05.23 3070
300 유혹 [3] 하늘꽃 2008.04.23 3066
299 담쟁이 물님 2014.05.13 3052
298 다이아몬챤스 공개^^ [2] 하늘꽃 2008.04.22 3035
297 사막을 여행하는 물고기 [2] 물님 2009.05.15 3034
296 10월 [1] 물님 2009.10.12 3033
295 나무학교 물님 2013.11.27 3032
294 나는 당신의 마음을 지니고 다닙니다 [1] 물님 2010.03.17 3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