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1901-1989)은 누구인가? 그는 시인인가? 그는 단언한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그런 그가 1946년 마흔다섯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일제가 몰락하여 물러나고 나라가 해방되었다. 그러나 나라는 둘로 갈라져 북쪽에 소련군이 진주했고 그 해 11월23일 신의주학생의거가 있었다. 당시 함석헌은 인민위원회 문교부장이었다. 그는 신의주학생의거의 책임자로 낙인찍혀 소련군에 의하여 투옥된다. 그리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감히 씨를 쓰다니, 몰려서 된 일이지 자신 있어 한 것이 아니다.... "
그는 어두컴컴한 감옥 안에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교도관의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는 직설적인 글보다는 은유적이고 간접적인 시로서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표현했다. 눈물 사이사이에 나오는 생각을 부자유한 지필(紙筆)로 적자니 부득이 시가의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함석헌, 그는 누구인가? 그처럼 치열하게 격동적으로 20세기 한국을 살다 간 인물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종교사상가, 평화주의자, 민주화운동가, 인권운동가라고 한다. 그는 ‘한국의 양심’‘한국의 간디'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의 생애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평화주의자로서 그는 비폭력무저항운동에 앞장선 인도의 간디와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2세를 존경했다. 서구 퀘이커들에 의하여 함석헌은 한국인 최초로 1979년과 1984년 노벨평화상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함석헌의 시에는 감동이 있다. 그 감동은 국경 너머 세계인들과 함께 공유하고 추구할만한 보편적이며 궁극적인 인간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의 명저 중의 하나인 『뜻으로 본 한국역사』도 함석헌은 과학적인 분석가의 머리로 쓴 것이 아니라, 시인의 열정과 가슴으로 쓴 것이다. 열정과 감동의 시인 함석헌은 끝 없이역사를 움직이는 영감의 원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