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2021.08.11 05:06
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천둥번개가 한 번 치고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바람이 바뀌었다
풀벌레 소리가 가늘어지고
새의 노래가 한 옥타브 높아지고
짙푸르던 나뭇잎도 엷어지고
바위 틈의 돌단풍이 붉어지고
다랑논의 벼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검붉게 익어오고
산국화가 꽃망울을 올리고
하늘 구름이 투명해지고
입추가 오는 아침 길에서
가늘어진 눈빛으로 먼 그대를 바라본다
조용히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무더운 열기와 무거운 공기와
얼굴을 가리고 말들을 삼키고
마스크 씌워져 무감하고 무디어진
내 생의 날들이여
이제 바람이 바뀌어 불고
맑아지고 섬세해진 나의 감각으로
거짓과 진실을
강제와 자율을
예리하게 식별해 가야겠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바뀌었다
하늘이 높아졌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93 | 인생을 말하라면 | 물님 | 2011.12.05 | 2383 |
192 | 지금 봉선화를 찾으시나요? [5] | 하늘꽃 | 2008.08.26 | 2385 |
191 | 꼬리잡기 [5] | 운영자 | 2008.09.15 | 2385 |
190 | 고향 -정지용 | 물님 | 2011.02.01 | 2385 |
189 | 오규원, 「겨울숲을 바라보며」 | 물님 | 2012.01.02 | 2387 |
188 | 꽃 -김춘수 | 물님 | 2012.07.24 | 2389 |
187 | 웅포에서 | 요새 | 2010.12.05 | 2392 |
186 | 킬리만자로의 표범 [2] | 물님 | 2011.07.03 | 2392 |
185 | 평화의 춤 [1] | 물님 | 2009.05.18 | 2394 |
184 | 바다 [3] | 이상호 | 2008.09.08 | 23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