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339910
  • Today : 1136
  • Yesterday : 1280


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2021.08.11 05:06

물님 조회 수:1698

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천둥번개가 한 번 치고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바람이 바뀌었다 

 

      풀벌레 소리가 가늘어지고

      새의 노래가 한 옥타브 높아지고

      짙푸르던 나뭇잎도 엷어지고

      바위 틈의 돌단풍이 붉어지고 

 

      다랑논의 벼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검붉게 익어오고

      산국화가 꽃망울을 올리고

      하늘 구름이 투명해지고 

 

      입추가 오는 아침 길에서

      가늘어진 눈빛으로 먼 그대를 바라본다

      조용히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무더운 열기와 무거운 공기와

      얼굴을 가리고 말들을 삼키고

      마스크 씌워져 무감하고 무디어진

      내 생의 날들이여 

 

      이제 바람이 바뀌어 불고

      맑아지고 섬세해진 나의 감각으로

      거짓과 진실을

      강제와 자율을

      예리하게 식별해 가야겠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바뀌었다

      하늘이 높아졌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3 초 혼(招魂) [1] file 구인회 2010.01.28 1576
292 설 밑 무주시장 / 이중묵 이중묵 2009.03.03 1577
291 님의 침묵 [1] 물님 2009.05.29 1579
290 감각 요새 2010.03.21 1579
289 가을 저녁의 시 [1] 물님 2010.11.18 1579
288 가장 좋은 선물은 ? 물님 2010.12.23 1579
287 문태준 - 급체 물님 2015.06.14 1579
286 웅포에서 요새 2010.12.05 1580
285 함성호, 「너무 아름다운 병」 물님 2011.11.22 1580
284 호수 -문병란 물님 2012.05.23 1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