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390291
  • Today : 968
  • Yesterday : 1104


봄밤 - 권혁웅

2012.09.20 13:40

물님 조회 수:4283

                      봄         밤

 

                                                                               권혁웅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저 캄캄한 혹은 편안함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管)이다

이쪽 저쪽으로 몰려다니는 동안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

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

현세로 돌아갈 패스포트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 있다

다시 직립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다시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봄밤이 거느린 슬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3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1] 물님 2011.10.18 4374
172 보내소서~힘 되도록~ [2] 하늘꽃 2008.06.06 4373
171 순암 안정복의 시 물님 2015.02.17 4372
170 삶이 하나의 놀이라면 물님 2012.04.07 4368
169 찬양 [6] 하늘꽃 2008.09.25 4365
168 이기인- 소녀의 꽃무뉘혁명 [1] 물님 2012.01.13 4362
167 어떤 타이름 하늘꽃 2008.07.01 4362
166 분수 -물님시 [1] file 하늘꽃 2007.08.29 4362
165 지금 봉선화를 찾으시나요? [5] 하늘꽃 2008.08.26 4361
164 봄 소식 하늘꽃 2009.03.02 4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