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353090
  • Today : 937
  • Yesterday : 988


봄밤 - 권혁웅

2012.09.20 13:40

물님 조회 수:2654

                      봄         밤

 

                                                                               권혁웅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저 캄캄한 혹은 편안함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管)이다

이쪽 저쪽으로 몰려다니는 동안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

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

현세로 돌아갈 패스포트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 있다

다시 직립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다시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봄밤이 거느린 슬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3 고향 -정지용 물님 2011.02.01 2580
122 순암 안정복의 시 물님 2015.02.17 2577
121 사랑이 명령하도록 하라 [2] 물님 2016.02.05 2574
120 지금 봉선화를 찾으시나요? [5] 하늘꽃 2008.08.26 2574
119 벼 - 이 성부 [1] 물님 2011.10.03 2573
118 둥우리여 - 백글로리아 [2] 구인회 2012.09.26 2567
117 풀꽃 [1] 물님 2010.12.30 2567
116 나는 우주의 것 - 정명 키론 2011.11.21 2566
115 그대에게 /이병창 [2] 하늘 2010.09.08 2566
114 봄은 울면서 온다 도도 2014.03.25 2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