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2011.06.30 21:33
직업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옳지 않다. 직업에는 분명히 귀천이 있다. 직업을 선택함에 적어도 죄짓는 직업은 갖지 말아야 한다.
대체로 귀하다 여기는 직업가운데 전혀 귀하지 않은 직업이 있다. 대체로 천하다 여기는 직업가운데 참 귀한 직업도 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금방 드러난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으나 그것은 외양일 뿐 사람 자체에 귀천이 있을 수는 없다.
세상에 몹쓸 직업이 검사요 변호사다. 세상의 검사라는 자들이 월급 받으며 하는 일이 죄 없는 이 잡아다가 죄 많다고 하는 일이다. 세상의 변호사라 하는 자들이 하는 짓이란 죄 많은 놈 에게서 돈 받고 죄 없다고 하는 자들이다. 이들이 다루는 죄는 진짜 죄가 아니라 법을 어기는 것이 죄다. 아무리 악을 행했다 하더라도 법이 정하지 않았으면 죄가 아니다. 아무리 선한이라도 위법했다면 죄인이다.
내가 너무 검사와 변호사의 직업을 천시했을까?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고의 지식과 실력을 갖춘이들이 그들인데 그들을 이렇게 폄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고의 직업이기에 최고의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세상에 몹쓸 직업이 군인이다. 생산은 없고 소비뿐이다. 연구하는 일이라는 것이 파괴요 훈련하는 것이 사람 죽이는 연습이다. 평소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크게 쓰이는데 그 때 하는 일이 연구하고 훈련받은 대로 파괴와 인명살상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권력찬탈도 넘보는 이들이 그들아닌가? 그래서인지 석가는 “칼 찬자 에게는 설법하지 마라”고 했다. 예수께서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셨다.
내가 너무 군인의 직업을 천시했을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고된 훈련도 마다하지 않고 목숨도 초개와 같이 바칠 수 있는 이들을 어찌 이렇게 폄훼할 수 있을까? 그러나 최고의 무력이기에 최고로 경계되어야 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세상에 몹쓸 직업이 금융업이다. 말이 금융업이지 실상은 고리대업이다. 부자들에게는 돈 빌려가라고 애걸을 하고 진짜 돈이 필요한 이들 에게는 매몰차게 거절한다. 빌려준다 하더라도 혹독한 이자를 받는다. 혹 형편이 어려워 연체라도 할라치면 따따블로 덤터기 씌운다. 기한 내 갚지 못하면 담보물로 잡은 것을 지체 하지 않고 경매에 넘긴다.
내가 너무 금융을 천시했을까? 금융이 흔들리면 경제가 흔들린다. 오늘날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먹고 돈을 소비한다. 돈이 돌지 않으면 유전은 석유를 뽑아 올리지 못하고 공장은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땅도 소출을 내지 않고 어선은 고기를 낚지 못한다. 멀쩡한 기업도 순식간에 무너진다.
누구보다도 욕을 많이 먹는 이들이 정치인이다. 정치인들이 왜 그렇게 욕을 많이 먹을까? 그들이 잘나서 그렇다. 그들의 권력이 커서 그렇다. 그들이 하는 일들이 너무 중요해서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당파성이 있다. 당파성이 있다는 것은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높은 자리에 있을 수록 전체를 생각해야 하기에 당파성은 줄어든다. 나와 다른 의견이 있는 이들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변질 됐다”고 욕을 먹는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존경받던 사람도 정치에 입문하고 나서는 욕을 먹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정치다. 욕먹기 싫다고 옛 소신을 굳게 지킨다면 그것이 오히려 ‘匹夫之勇’이다.
정치인들 그들의 결정 하나 하나가 국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들이다. 하는 일들이 중요하기에 권력도 크다. 많이 조사하고 연구해야 하고 검토해야 하기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고 밤을 새워도 시간이 모자란다. 그들의 일들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유혹도 많다. 간혹 일하지 않고 권력만 누리고 유혹에 넘어간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분노케 한다.
세상에 직업이 많지만 제일 헛갈리는 직업이 종교인이다. 종교인이야 말로 존경과 비난과 조롱을 동시에 받고 있다. 본래 영양이 풍부한 음식일수록 부패하면 더욱 역하듯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듯이, 존경이 높을수록 그 멸시도 크듯이 종교는 그 역할이 거룩하여 영광도 크지만 욕됨도 크다.
조선시대 제일 소망이 없는 인생으로 매도된 이들이 ‘이판’과 ‘사판’이었다(이판은 수행승, 사판은 행정승이다. 이판이 되든 사판이 되든 중이 된다는 것은 막된 인생이라는 뜻)이다. 제일 무질서 한곳이 야단법석(사람이 많이 모여 법회자리를 법당에 차리지 못하고 들에 단을 쌓고 법회자리를 마련한다는 뜻)이다. 동네 똥개도 중은 마음 놓고 물어 뜯었다.
역시 조선시대 민중들의 비난을 제일 많이 받은 이들이 양반들이다. “양반”이라는 호칭이 어느덧 욕이 되었다. 사람들이 다투다가 “이양반이~”하면 “뭐! 양반!”하면서 달려든다.
서양에서는 어떠한가? 공공연하게 교황은 악마로 묘사되었으며 교황청은 “일곱 머리의 짐승”으로 그려졌고 면죄부 궤에서는 악마가 기어 나온다. 각종 문학작품들에서는 성직자들의 타락상이 무수히 등장하는데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더럽고 추잡하게 수록되어 있다. 서양세계가 기독교세계이니 기독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 하겠지만 그만큼 비난과 조롱도 감수해야 했다.
많은 경우가 그렇듯이 영광과 욕됨은 동전의 양면이다. 종교는 시대를 이끄는 정신이요 최고의 가르침으로 무한한 권위와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없는 멸시와 천대를 당한다. 종교는 이렇게 멸시와 천대를 당하면서 다시 새로워 진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목사의 인기가 매우 높았었다. 그것이 기독교 비난의 신호탄이었다. 이제는 목사가 매우 인기 없는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
잘난 사람은 목사가 되면 안 된다. 똑똑한 사람도 목사가 되면 안 된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은 결코 섬기는 삶을 살 수 없다. 틀림없이 걸맞는 대접을 받고자 한다.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이 너무 잘났다. 너무 똑똑하다. 진짜 잘나고 진짜 똑똑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나고 똑똑하다. 그리고 너무 당당하다. 그래서 모욕당할 줄을 모른다. 모욕을 견딜 줄도 몰라 작은 모욕에도 크게 당황한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기독교성직자에 대한 모욕의 시대가 도래할 것인데 어찌 견디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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