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2021.08.11 05:06
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천둥번개가 한 번 치고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바람이 바뀌었다
풀벌레 소리가 가늘어지고
새의 노래가 한 옥타브 높아지고
짙푸르던 나뭇잎도 엷어지고
바위 틈의 돌단풍이 붉어지고
다랑논의 벼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검붉게 익어오고
산국화가 꽃망울을 올리고
하늘 구름이 투명해지고
입추가 오는 아침 길에서
가늘어진 눈빛으로 먼 그대를 바라본다
조용히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무더운 열기와 무거운 공기와
얼굴을 가리고 말들을 삼키고
마스크 씌워져 무감하고 무디어진
내 생의 날들이여
이제 바람이 바뀌어 불고
맑아지고 섬세해진 나의 감각으로
거짓과 진실을
강제와 자율을
예리하게 식별해 가야겠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바뀌었다
하늘이 높아졌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63 |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 | 구인회 | 2010.01.29 | 1655 |
162 | 구름의 노래 [1] | 요새 | 2010.07.28 | 1654 |
161 | 이장욱, 「토르소」 | 물님 | 2012.03.27 | 1653 |
160 | 봄날에 [1] | 요새 | 2010.01.01 | 1653 |
159 |
나는 배웠다 / 샤를르 드 푸코
[1] ![]() | 구인회 | 2010.07.27 | 1651 |
158 | 사철가 [1] | 물님 | 2009.03.16 | 1651 |
157 |
꽃 꺾어 그대 앞에
[1] ![]() | 구인회 | 2010.01.30 | 1650 |
156 | 별속의 별이 되리라 -잘라루딘 루미 | 구인회 | 2012.06.30 | 1649 |
155 | 그대 옆에 있다 - 까비르 [2] | 구인회 | 2012.02.15 | 1649 |
154 | 나는 숨을 쉰다 [1] | 물님 | 2011.11.28 | 16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