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의 편지 / 기우(杞憂)
2014.09.10 21:53
‘기우’라는 말은 옛날 기(杞)나라 사람 중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까지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에 대한 고사에서 연유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싱크홀(sinkhole)’이라고 해서 지반이 무너지는 재난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걸 보면 기우(杞憂)라는 말도 무색해집니다.
지반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다리가 후들거리고 발바닥이 근질거리게 하지만 상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지요.
늘 아픔과 어려운 문제들이 병행하는 삶의 애환은 가까운 이웃에게서 오히려 픽션보다 더 리얼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주변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 아직도 많은 일들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 중에 우리 뒷집에 세 들어 살던 아저씨는 마음은 착했지만 말을 못하는 언어장애인이었습니다.
그 아저씨는 몸이 비대하고 지능이 좀 낮아 보이는 딸 하나와 살고 있었는데 그녀가 여관을 운영하는 고모네 집을 들락거리더니 배가 불러왔고, 그 소문은 온 동네에 퍼졌습니다.
당시 군산에서 잘 나가는 약업사 원장에게 바람기 있는 대학생 아들이 있는데 그가 바로 그녀를 임신하게 한 범인(?)이라는 것입니다.
말을 못하는 그녀의 아버지는 울분을 터트리며 딸에게 폭행을 일삼았지만 그녀는 이웃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늘 웃으며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살빛이 뽀얀 예쁜 딸을 낳아 혼자 기르면서 광주리에 물건을 이고 시장에 나가 팔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초저녁 무렵에 동네 가게 앞에서 그녀는 술이 취해 노래를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눈물을 훔치면서 보고 있었습니다.
젖이 떨어지자 아빠 집에서 아이를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슬픔을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그대 떠난 그 후에 병든 내 마음 달래주던 옥이도 내 딸 옥이도 날 버리고 가버렸네 아빠 곁으로...” 나는 그 노래가 그렇게 슬픈 노래인 줄 그때 알았습니다. 그리고 가엾은 그녀가 슬픔을 잘 이겨내고 행복해지기를 원했습니다.
‘승리’란 추위와 비바람 속에서 피어나는 꽃에게 해당되고 ‘성공’이란 고난과 어려움을 잘 견디며 이겨나가는 삶이지요.
걱정이란 결국 기우일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걱정으로 해결 될 수가 없으니 여전히 기우일 수밖에 없지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6:27)
땅이 꺼지더라도 무저갱에만 던져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절망에서도 소망으로 날아오를 수가 있습니다.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신명기33:27)
숲에는 잎이 마르는 내음으로 가득하고, 가을 숲에 서는 모두가 낙엽처럼 외로워지지만 혼자 걸어도 낙엽들은 바삭거리며 다정한 친구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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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보다 더 앞서가는 낙엽이 있으니
바로 벚꽃나무랍니다. 잘 바라보면 일찌감치 옷을 벗고 계절을 맞이합니다.
멋진 사진과 찡한 글 고맙습니다. 가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