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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한목사의 '개혁에 대한 생각'

2014.11.04 18:04

물님 조회 수:11968

김홍한목사의 '개혁에 대한 생각'

 

개혁이라는 것은 참 신나는 것이다. 함석헌선생은 『뜻으로 본 한

국역사』에서 신나는 일 세 가지를 말한다. 풀무간이다. 녹슨 못, 깨

진 솥뚜껑, 군인의 부러진 칼 등등 온갖 잡동사니 쇠들을 도가니에

넣고 부글부글 끓여서 내 놓으면 번쩍번쩍 빛나는 쇠가 나온다. 넝

마주이다. 똥 종이, 부도난 수표조각, 정부의 비밀문서까지 공이로

콩콩 찌어서 표백제 넣고 맑은 물에 씻어서 종이를 만들어 내면 눈

처럼 하얀 종이가 나오는데 거기에다가 시도 쓸 수 있고 그림도 그

릴 수 있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묵은 언덕 갈아엎기이다. 넓

은 골프장 같은 땅 벅벅 갈아서 감자 심고 고구마 심으면 주먹 같

은 감자, 신발짝 같은 고구마가 툭툭 튀어나오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이것이 개혁이다

 

.

1517년 10월31일 루터는 가톨릭을 비판하는 95개조 논제를 발

표함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당시 가톨릭은 성직매매가 비일

비재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무척이나 착취하였다. 넓은 토지를 소유

하고 토지세는 물론 종교세를 거두었다. 거기에 면죄부까지 강제로

판매했다. 면죄부는 십자군전쟁 때부터 있었다. 교회는 십자군전쟁

에 참여하는 군인들에게 죄 사함을 선언했다. 그 후 면죄부를 사는

사람들도 죄가 사해진다고 했다. 죽어서 지옥에 간 사람도 그의 후

손들이 그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사면 죄 사함 받고 천국에 간다고

했다. 특히 성 베드로 성당 건축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하여 대

대적으로 면죄부를 강매했다.

 

행함이냐 믿음이냐?

 

종교개혁은 가톨릭이 타락했다는 윤리적 차원의 개혁이 아니라

관점의 변화이다. 루터의 신학은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

니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바울선생의 가르침과 어거스틴의

신학을 기초로 한다.

 

경험(經驗)과 이성(理性)이 철학의 열쇠다. 실체(實體)냐 관념(觀

念)이냐가 신론(神論)의 핵심이다. 이(理)와 기(氣)가 주자학의 논쟁

이다. 이(理)와 심(心), 격물치지(格物致知)와 활연관통(豁然貫通)에

서 주자학과 양명학의 관심이 나뉜다. 법(法)이냐 각(覺)이냐로 불

교의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이 나뉜다. 율법(律法)이냐 복음(福音)

이냐 로 유대교와 기독교가 구별되고 행함이냐 믿음이냐로 유대주

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야고보와 이방인 기독교를 대표하는 바울의

가르침이 나뉜다. 이러한 논쟁들은 결코 공리공론이 아니다. 모르

는 이들, 관계없는 이들에게는 중요하지 않겠지만 정작 당사자들에

게는 진리에 도달하는 열쇠이니 죽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하다.

 

행함과 믿음의 문제는 야고보와 바울의 대립으로 끝난 것이 아니

다. 어거스틴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으로 반복되고 종교개혁자

루터의 최대관심사였으며 오늘날에는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행함과 믿음의 문제는 결코 일단락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코 대립되는 문제도 아니다. 기독교를 지탱하고 있는 두 축이다.

어느 한쪽이 크게 강조되면 신앙체계는 기운다. 행함 없는 믿음이

있을 수 없으며 믿음 없는 행함도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야고보와

바울은 의미 없는 싸움을 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기독교신앙

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것이었다.

 

역사는 발전한다. 그리고 반복한다. 그러나 그 반복이 똑같은 반

복은 아니다. 반복하되 발전하는 반복이다. 철학적 명제들, 신학적

명제들도 반복하면서 발전한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교회에서 가톨릭 분위기의 것들을 거부했다.

교회내의 계급을 타파했다. 신도들로 하여금 목사들을 선출토록 하

고 목사와 장로들로 하여금 교회를 다스리도록 했다. 예배를 지극

히 간소화해서 예식, 예복, 악기, 성상,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일체

금지시켰다. 교회의 생명력은 형식적인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권위는 하나님께 근거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

는 검증이 안 된다. 그래서 교회제도가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한다.

그것이 문제다. 하늘로부터 온 제도로서의 종교적 권위란 없다. 모

두가 하나님의 자녀다. 모두가 사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고 바울

선생이 확인하였고 칼뱅이 조직화 하였다. 그래서 개혁교회에는 사

제가 없다. 목사(牧師), 목자(牧者)가 있을 뿐이다.

 

참 성직자에게는 외적 권위가 필요 없다. 사실 목사의 직함도 필

요 없다. 하물며 외적 모습이 聖衣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총회

장이니 감독이니 노회장, 주교등의 직책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이렇게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제거했건만 새로운

권력이 만들어졌다. 칼뱅은 쥬네브 시를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 가혹한 통치제제를 마련했다. 사소한 잘못으

로 목숨까지 빼앗는 일들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쥬네브 시는 神國

이 아니라 엄격히 통제된 사회였다.

 

정치와 종교

 

16세기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기득권세력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루터는 기득권 세력인 영주들과 손을 잡았고

칼뱅은 신흥 상공인들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며 영국의 국교회는 왕

을 비롯한 기득권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권력자들과 함

께하였기에 대중과 함께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강자의

종교로서 가톨릭과 권력을 나누었고 방해되는 세력은 제거했으며

나름으로 전통을 만들었다. 자신들의 권력에 반하는 이들에 대해서

는 압제자가 되었다. 루터는 자유를 외치는 농민들을 “미친개처럼

때려 잡으라”고 제후들을 독려했다. 권력기반이 없는 재세례파 신

도들은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다.

 

종교개혁시대에 개인은 종교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적어도 가난

한 민중들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없었다. 그들의 신앙은 그들의 지

배자인 영주의 종교를 따라야 했다. 이렇게 정치와 종교는 현실적

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정치인들도 종교행위를 할 수 있고 종교인들도 정치행위

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정

치는 가장 세속적인 것이고 종교는 가장 초월적인 것이라는 면에서

그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문제는 정치가 종교를 권력유지의 수단

으로 삼는 것이고 종교가 신의 섭리보다는 권력을 의지하고 권력을

탐하는 것이다. 그리되면 종교는 종교가 아니고 종교인은 종교인이

아니다.

 

종교개혁은 계속되어야한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도 전통과 관습이 만들어졌다. 전통과 관

습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결코 본질일 수 없다. 아무리 강조한

다 해도 껍데기임에는 틀림없다. 가톨릭의 전통과 관습이 종교의

본질일 수 없다고 거부함으로 시작한 것이 종교개혁이지만 역시 전

통과 관습이 기독교 복음을 제어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개혁은 일

회성일 수 없다. 끊임없이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의 결단과 가르침을 존중한다. 그들의 결단과 가르

침은 나름대로 바르게 하자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그 몸부림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지 그들의 주장과 주의를 답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오류와 실책을 분명히 하고 반성하고 수정해 나가

는 것이 종교개혁 정신이다.

 

선교

 

종교가 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한다.

과거 서양 기독교 국가들은 복음을 들고 피선교지로 간 것이 아니다.

그들의 무기는 총과 대포였고 문화적 무기는 진화론이었다. “백인이

유색인종보다 우월하다.” “백인종들의 종교인 기독교는 유색인종들의

종교보다 우월하다.” 이러한 진화론적 우월주의로 피선교지의 전통문

화는 미개한 것이고 전통종교는 미신 내지는 악마의 종교로 간주되었

다.

 

기독교의 제국주의적 선교가 성공한 것은 극히 드물다. 인도, 중국,

이슬람국가들, 일본, 동남아시아 등 전통적인 문화가 있는 곳에서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북미와 남미의 경우는 선교라기보다는 유럽인들이

건너가서 형성된 사회이기에 기독교인들의 이주라 해야 할 것이다.

극히 예외적으로 성공한 곳이 우리나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

리나라의 기독교는 비록 제국주의와 함께 들어온 것이기는 하되 침략

자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침략한 것은 서구 기독교 국가가

아닌 일본 제국주의였다. 우리나라에서의 기독교는 정복자의 종교라기

보다는 일제에 항거하고 박해받는 종교였던 것이다. 기독교 선교 성공

과 실패의 사례가 분명하니 앞으로의 선교방법도 분명하다.

 

평화운동

 

20세기 들어서서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다. 근대 이

후 인류는 인간의 과학적이고 합리적 이성을 전폭적으로 신뢰했는

데 그 결과가 대규모의 참혹한 전쟁이었다. 인간의 과학적이고 합

리적인 이성은 전쟁을 막기 보다는 오히려 전쟁의 원인이었던 것이

다. 그런데 그 이성이라는 것은 “백인은 유색인보다 우월하다, 인

간은 동물보다, 이성은 감성보다, 정신은 육체보다, 남성은 여성보

다 우월하다”는 식의 왜곡된 이성이었다.

 

18세기 이후 동양인들은 서구인에 비해서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

고 있었다. 단순한 선입견이 아니라 ‘엄연한 과학적 사실’로 알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동양인 스스로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 인

식의 결과는 뻔하다. 우수한 서구인들이 열등한 동양인들을 지배하

고 계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침략과 전쟁의 명분이 되었다.

역시 우수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고 파괴하는 것이 당연

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생태계파괴의 명분이 되었다. 근대적인

이성이라는 것이 이렇게 야만적인 것이었고 아직도 상당히 그 야만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구의 이성이 사실은 야만으로 드러난 오늘날, 21세기 기독교를

예측해 본다. 두 가지 현상이 뚜렷이 나타날 것이다. 하나는 이성

적 사고를 정지한 더욱 완고한 근본주의이다. 또 하나는 평화운동

이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지 않는 근본주의는 교리주의, 율법주의,

성서무오설, 창조과학 등에 집착한다. 얼핏 보면 상당히 신앙적인

것 같지만 실상은 불신앙이다. 예수의 복음은 사라지고 교리와 율

법이 진리를 대신한다. 복음의 핵심 내용인 ‘사랑’과 ‘용서’는 사라

지고 자신들과 신앙이 다른 이들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심만 증폭된

다.

 

왜곡된 이성에 의하여 파괴된 세상을 회복하는 일이 평화운동이

다. 성숙한 이성은 나와 다른 이 들을 용납하고 함께 살아가는 평

화운동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연일 것이다. 왜곡된 이성이 인종, 종

교, 문화를 우열로 갈라놓고 다름을 틀림으로 분류했다면 성숙한

이성은 그러한 야만을 극복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함으로 세상

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다. 역시 정복과 착취의 대상으로만 알았던

자연을 우리의 어머니로 인식하는 것이다.

 

왜곡된 이성이 아직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곳이 종교다. 왜곡

된 이성의 극단적 현상이 바로 종교의 배타성이다. 그 배타성으로

말미암아 1-3세기 기독교는 로마사회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또한

그 배타성으로 말미암아 서양사회를 기독교화 했다. 배타성은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결과를 낳는다. 기독교는 서양에서 전부가 되었다.

그 기독교가 동양에서도 전부이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아직도 기독

교는 “땅 끝까지 복음을…”을 지상명령으로 알고 “전부”를 추구한

다. 그러나 기독교의 배타성은 오히려 타종교인은 물론 비종교인들

에게 까지도 마음과 이성의 벽을 높게 쌓을 뿐이다.

 

기독교는 이 배타성을 버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배타성이 기

독교의 정체성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는 고대 로마가

아니다. 현대인은 강력한 배타성에 머리를 숙이기에는 너무나 이성

적이고 현명하다. 기독교가 배타성을 고집하는 한 기독교는 21세기

에는 역사의 유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교회일치운동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이고 그 역사가 깊으며 그 영역이 광대한

만큼 수많은 사상과 주의, 주장들이 존재한다.

이제까지의 세계 종교지평은 분열 일변도였다. 종교의 분열과 함

께 인류도 분열하고 문명도 분열하였다. 세계가 가까워지면서 이제

는 서로를 어느 정도 알아가기 시작했다. 가까워지고 알게 되면 이

해하게 된다. 이해하면 함께할 수 있다. 세계는 이제 종교분열에서

종교화해의 시대로 나아간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 움직임은 이

미 시작되었다.

 

타종교와의 화해와는 별개로 기독교 내에서의 교회일치가 중요한

우리의 과제이다. 종교개혁 이후 분열된 교파들은 때로는 전쟁도

불사하면서 분열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분열이라는 것이 부

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각 교파들은 나름대로 진실성을 가지고 교

리를 만들고 전통을 형성했으니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

 

교회일치이라 함은 결코 교파통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독일과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이 교파통합을 시도했었으나 그것은 전

체주의 발상이고 또한 매우 불순한 의도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

다. 교회일치라 함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다양성 속

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교리와 전통을 존중하되 그 근본이

되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의 공통분모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다른 이 들은 나의 거울이다. 다른 이들을 보고 나를 안다. 관계

성 속에서 나의 존재가 드러나고 명확해진다. 남을 모르면 자신도

모르고 자신을 모르면 남도 모른다.

 

한국교회의 역사와 분열

 

무엇이든지 성장하려면 단계를 밟아야 한다. 비록 130년의 한국

개신교 역사이지만 서구 기독교가 2천년동안 겪었던 것들을 다 겪

었다. 그만큼 급하고 격렬하게 한국교회는 변화와 성장을 거듭했

다.

 

한국기독교의 1907년 회개운동은 초대교회의 성령 충만함이다.

일제 강점기는 로마의 박해시기, 1935년 아빙돈주석(유형기 단권주

석) 사건은 이성이 눈뜨기 시작하는 데카르트 이후 서양 기독교의

근세에 해당된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하의 기독교는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이 밀착되어있는 중세다. 그리고 한국전쟁 시 공산주의를

대하는 기독교는 마치 십자군전쟁을 수행하는 것과 같은 분위기였

다. 해방 후 교단의 분열은 종교개혁이후 서구교회의 분열과 같은

홍역을 앓는 것, 1970-80년대 한국교회의 급격한 성장은 1800년대

서구의 대부흥운동과 같다. 역시 1979-80년대 한국교회의 인권,

통일, 민주화운동은 독일 나치하의 저항운동을 비롯한 기독교사회

주의 운동의 한국적 표현일 것이다. 또한 민중신학과 토착화신학은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을 비롯한 제3세계 신학의 내용을 담고 있

다.

 

한국교회의 분열, 그 분열의 씨앗은 선교사들이 처음부터 가지고

온 것이었다. 또 하나는 일제에 의해서 뿌려진 것이었다. 일제가

뿌린 씨앗은 신사참배문제로 인한 고신파의 분열로 나타났고 선교

사들이 가지고 온 씨앗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씨앗으로 1953

년 기장과 예장의 분열로 나타났다.

 

한국교회 분열의 시기는 해방공간과 한국전쟁기간을 꽉 채운 시

기, 즉 우리나라의 상황이 매우 혼란하고 극심한 어려움 속에 있을

때였다. 왜 하필이면 이렇게 어려운 때에, 뜻을 모아 화해와 평화

를 외쳐도 부족한 때에 이토록 치열한 내부싸움을 해야 했는가? 아

마도 당시 한국기독교교회는 상대적으로 가장 안정된 때였다는 역

설이다. 이 기간에 기독교교회는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확실한 보

호를 받고 있었다. 숫한 사람들이 공산당으로 매도될 때 기독교인

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상적으로 안전할 수 있었으며 상당수

의 기독교 인사들이 정치권력에 직간접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니 평신도뿐만이 아니라 목사신분으로서 정치권력을 행사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 혼란한 시대에 기독교

교회는 외부로부터 박해가 없는 가장 안정된 시기로 내부 홍역을

치르는 시기였다. 일제강점기와 같은 외부로부터의 탄압이 있을 때

는 내부의 갈등이 있더라도 감내하지만 외부의 탄압이 사라지면 내

부 갈등은 터지게 마련이다.

 

비난받는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윤리적으로 타락했다고 한

다. 신학적으로 무지하다고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맘

몬을 섬긴다고 한다. 너무 배타적이라고 한다. 교회가 너무 많다고

한다. 너무 강압적 선교를 한다고 한다. 약자보다 강자 편에 서 있

다고 한다. 정치적이라고 한다. 교회를 사유재산처럼 세습한다고

한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비난들은 나름 일리 있는 지적임에도 불구하

고 전적으로 옳은 지적은 아니다. 교회의 타락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든지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마땅한 거룩한 이들이 있음도 알아야 할 것

이다. 교회 역사상 온전히 거룩한 때도 없었지만 온전히 타락한 때

도 없었다. 빛과 그림자는 공존한다.

 

대중의 비난과 칭찬을 교회개혁의 주제로 삼을 수는 없다. 대중

의 칭찬과 비난이야 말로 허망한 것, 대중의 요구에 부화뇌동 하다

보면 결과는 오히려 정체성의 상실이다. 때로는 대중의 칭찬을 무

가치한 것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하고 대중의 비난에도 당당할 수 있

어야 교회다.

 

 

그 “당당할 수 있는 무엇”이 무엇일까? 그것을 말하기는 어렵다.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지극히 신비로운 종교의 핵심이기 때문이

다. 유감스럽게도 이 이야기는 좀 유보해 두어야겠다.

 

순결하고 성숙하자

 

한국교회 안에 수많은 생각들과 주장이 공존하는 것은 그만큼 성

숙하다는 증거다. 갈등이 심한 것은 성숙해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좀 더 성숙해야 한다.

 

성숙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처음의 순수함을 잃는다. 타성에 젖고 뻔뻔해진다. 재산도 생기고

기득권도 생긴다. 그러면 또다시 개혁되어야 한다. 성숙이란 이러

한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이루어질 것이다. 개혁이란 끊임없

는 비판과 비난 속에 자기진단과 자기반성, 자기성찰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사랑하는 이만이 교회를 비판할 수도 있고 교회를 개혁할

수도 있다.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이 한국교회를 개혁할 수 있다. 개

혁이란 옛것만 고집하는 고루함을 떨쳐내는 것이다. 보수적인 기독

교인들이 개혁할 수 있다. 개혁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왜곡되었

던 본래의 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이여! “나만 그런가? 모두가 그런데…”

하고 항변해서는 안 된다. 남들이 똥 싼다고 나도 덩달아 똥 쌀 수

는 없지 않은가? 나만이라도 순결하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자. 교회

는 타락한 이들에 의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순결하고 성숙한 이

들에 의하여 지켜지는 것이다.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이여! 정죄와 비난으로 핏대를 올림으

로 자신의 추악함을 감추고 그래서 정작 대안은 내놓지 못하는 무

책임함으로는 소망이 없다. 정죄보다는 연민을, 비판보다는 대안을

찾아보자. 그래야 소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