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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 죽창과 종 (1)

 

혹시 교인 여러분들도 우연히 편 성경이 현재 상황과 절묘하게 들어맞는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런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사건은 어렸을 적 캐나다에서 매일 새벽 홈스테이 아이들 모두가 같이 성경을 읽었을 적입니다. 당시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야곱이 데릴사위를 끝마치는 지점까지 읽고 있었습니다. 마침 전날 밤에 남자애들이 19금 매체를 몰래 보다 들켰는데 다음날 야곱이 품삯으로 가져갈 가축들을 고르는 대목이 나왔습니다. 우수한 가축은 얼룩무늬 나뭇가지를 보게 하고, 비실비실한 가축은 그냥 돌려보내어 우수한 점박이들을 많이 데리고 갔다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때 깊은물님께서 동물도 보는 것을 닮는데 너희들도 그럴지 모른다.”라고 하며 남자애들을 다독이셨는데 지금 생각하니 꽤 귀여운 일이었네요.

 

, 쓰다 보니 서론이 길어졌군요. 왠지 오늘은 굽이굽이 쓰고 싶은 밤이예요. 모쪼록, 요점은 마침 예수님의 채찍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번 주 예배 시간에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이 나와 즐거운 놀람이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채찍은 아직도 제가 해답을 찾지 못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숨님께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나의 할 말을 하라고 하셨는데 아직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면 내가 옳은지 모르고, 설사 옳더라도 조금만 참으면 어차피 지날 일이고, 또 무섭기 때문입니다. 내가 틀렸거나, 일이 실패했을 때 더 힘들어지거나, 모세처럼 친구들의 비난을 받거나, 의병들처럼 전략 없이 죽창을 들고 나섰다가 개죽음만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숨님께서는 의병 이야기 부분에서 안타까워하셨죠.)

 

최근에 채찍으로 다 뒤엎고 싶었을 때는 병원 실습 때였습니다.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학비는 내고, 무급 보조 인력으로 사용하는 학교에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일 년뿐이고, 이제껏 그래 왔는데 괜히 물의를 일으키면 더 피곤해질 테니 굳이 나서지 않았습니다. 다만 동기들끼리 다 같이 플래카드를 들고 병원 주위를 삥 둘러서 일인 시위를 하자고 진심인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아마 훌륭한 리더가 있었다면 다들 따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게 저는 아니었지만요.

 

한편으로는 진료비가 낮은 우리나라에서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학병원은 항상 적자거든요. 혹은 지금 발전 상태에 있으므로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 수도 있어요. 실제로 저희를 그렇게 괴롭히던 점수제 방식이 내년부터는 사라진다고 합니다. 교수님들도 더 나은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거든요.

 

그리고 자격의 문제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일 년만 버티면 되니까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의를 지키는 선, 남들 하는 만큼의 선만 지켰습니다. 너무 열심히 하지 않게, 하지만 너무 안 해서 튀지도 않게. 그러니 무언가 불만을 제기하기에는 스스로 떳떳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 만용과 비겁 사이의 중용을 찾으라는 한 철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깊이 있게 저쪽의 사정을 알지도 못하고 내가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는데 불만을 자신 있게 토로하는 건 만용 같고, 반면 일 년만 지나면 어차피 내일이 아니니 괜찮아하는 것은 비겁하게 느껴졌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나요? 최근 유튜브에서 본 메르켈 총리가 떠오릅니다. 깊이 숙고하고 중재하며 실리마저 잡았던 여성 총리 말입니다. 대화로 풀어내는 능력, 그 대화의 물꼬를 트는 능력 말입니다.

 

우리의 불만을 말하기보다는 하나둘 참다 보니 큰 괴로움이 생긴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욱 시간만 빨리 가라하는 일꾼이 되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탓하는 어투 없이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법을 몰라서 일지도 모릅니다. 그 와중 병원 인력 모두는 너무 바빴습니다. 아파서 잔뜩 짜증이 난 환자분들을 진료하기만도 벅차니까요. 하지만 다들 정말로 의미 있는 대화의 장이 열린다면 모두 참여할 거예요. 쉽지는 않겠지만요. 처음 몇 번은 상처만 남은 채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있고요. 확실한 대안이 없으니까요.

 

( 굽이굽이 쓰다보니 내용이 길어져 다음 편지에 계속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