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의 이야기 / 나비 가족
2023.03.10 08:07
登壇 隨筆
나비 가족 / (가온)최명숙
‘이삭’과 ‘이다’라는 남매를 둔 가정에 몇 달 전 두 남매와 긴 터울을 두고 쌍둥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 아기들로 인해 주일이면 예배당이 꽃이 핀 것처럼 환하고 훈훈해졌다. 어느새 앞니가 똑같이 두 개씩 난 녀석들이 앉고 기면서 한 주 한 주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은 마치 봄 나무에 발아(發芽)하는 잎새처럼 사랑스럽기만 했다.
이제는 제법 낯을 가리느라 사람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앙~”하고 울어버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모두가 녀석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쌍둥이들에게 정신이 팔려있을 때, 시각장애로 앞을 보지 못하는 이삭은 쌍둥이 동생들의 소리를 들으며 한쪽에서 혼자 행복한 표정으로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귀여워서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와락 달려들기도 했다.
귀여운 쌍둥이 동생들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없는 이삭은 들을 수 있는 청력을 최대한으로 열고, 동생들의 모습까지도 소리로 빨아들일 듯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기들의 모습을 보는 데만 열중하느라 아기의 소리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이삭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아기들의 소리뿐만이 아니라 모습까지도 눈 대신 귀로 듣고 있는 듯했다.
10살이 된 이삭은 6살에 사고를 당했다. 모든 사고가 그렇듯이 이 아이 또한 예기치 않게 하필 자기가 매일 타고 다니던 유치원 차로 머리에 중상을 입게 되었고, 그 사고로 인해 뇌의 일부와 함께 시각장애를 갖게 된 것이다.
그때, 아이가 몸으로 입은 장애를 젊은 부부는 오롯이 가슴으로 떠안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이의 아빠는 늘 아이 곁에서 큰나무 그림자로 한 몸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이의 교육을 위해 맹학교에 입학을 시켜야 했는데 이 지역에는 학생 수가 부족해서 셔틀버스가 운행되지 않자 아이의 아빠는 행정기관을 통해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찾아내어 마치 지역공무원처럼 그들의 집을 직접 방문해서 입학을 권유하기도 했다.
이삭은 아무데서나 가끔 크게 외마디 소리를 질러서 늘 조심스럽게 주변을 의식하는 부모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한창 궁금하고 호기심이 많아 천방지축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던 아이가 갑자기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칠흑같이 어둡고 막막한 세계 속에 던져진 상태에서 어쩌면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지르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볼 수 없는 세계 속에서 무엇이든지 손으로 만지고 집어던지는 이삭에게 있어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동생 ‘이다’는 그야말로 오빠에게 있어 가장 만만한 도구나 장난감과 같았다. 물건처럼 두드리고 밀고 던지는 대로 이리저리 넘어지고 쿵쿵 부딪치면서도 싸우거나 울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면서 숙명처럼 견디는 ‘이다’가 그럴 때마다 안쓰러우면서도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느 날 이삭이 우연히 옆에 있는 자전거를 손으로 더듬어서 식별하더니 눈을 다치기 전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대뜸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이다는 순간, 오빠가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급히 작은 몸을 던져 낭떠러지가 있는 도로 왼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에게 자전거를 태워주는 어른처럼 왼손으로는 핸들을,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자전거 뒤쪽을 잡고 오빠가 페달을 밟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짧은 다리를 자전거 바퀴보다도 더 빠르게, 마치 모터처럼 돌려대며 악착같이 따라가는 것이었다.
나는 나이답지 않게 철이 든 이다의 행동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아이가 그렇게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생각해보곤 했다. 밤이면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며 엄마하고 자려고 떼를 쓴다는 그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저토록 강한 보호 의식이 있었을까?
어느 봄날 아이는 이런 동시를 썼다.
나비 가족 / 장이다
나비 가족이 소풍을 가요
아빠 나비와 엄마 나비는
쌍둥이 나비를 데리고 가고
동생 나비는
오빠 나비를 데리고 가고
산에 도착했어요.
아빠 나비 엄마 나비는
벌레를 먹고
오빠 나비 동생 나비는
꿀을 먹고
쌍둥이 나비는 우유를 먹어요.
이다가 쓴 글에서 보는 그 가족의 분위기는 봄날 날개를 나풀거리며 소풍 가는 평화로움! 그 자체이다. 동생 나비인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앞을 못 보는 오빠 나비도 어떤 결격사유나 불행한 여건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봄꽃 동산에서 고운 날개를 나풀거리는 나비와 같이 평화를 누리며 벌레와 꿀과 우유로 만족하는 ‘나비가족’이었다.
행복은 일반적인 통념을 떠나서 주관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기에 아무도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다. 또 상처를 품은 자에게 개인의 생각대로 만들어진 판단의 자(尺)를 들이대거나, 편견이나 선입견의 돌을 던져 구태여 불행을 공식화하기보다는 나름대로 일어설 수 있도록,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모두가 공감하고 인정해 주는 이웃이나 친구라면 좋겠다.
‘나비 가족’에게 행복과 평화가 함께하기를 바라며 상처 위에 새싹처럼 돋아난 쌍둥이들이 내가 그들에게 지어준 이름처럼 그 가정에 늘 지치지 않는 ‘힘’이 되고, 기쁨의 ‘샘’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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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에세이 글 잘 읽었습니다 눈물입니다 사랑입니다
마음 가득 채워주신 영혼의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