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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 분이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보내신 분의 뜻을 잘 받드는 삶을 완수하고 가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한한 존엄성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기름 부은 받은 자라는 뜻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자.

예수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신성한 존재임을 설파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 던진 폭탄이었다. 예수의 사상은 평화를 위한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평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데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인간은 모두 존재의 왕이라는 것, 이 세상에 대한 책임적 존재로서 제사장과 선지자의 사명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밝혀 주셨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비굴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한다. 예수는 로마의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그것도 이스라엘의 변방에서 목수의 아들로 성장했다. 그의 삶은 돈과 권력과 어떤 종교적 신비에도 무릎을 꿇지 않는 치열한 삶이었다.


불재의 대문에는 하늘과 땅의 중간에 붉은 수레바퀴가 그려져 있다. 그것은 자유를 염원하는 열정의 불길이 심장에서 타오르고 있는 짚시의 깃발이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세명의 짚시 청년들을 시내버스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삶을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과 생명에 초점을 모을 줄 안다는 것이다. 본 회퍼 목사는 ‘가장 좋은 것은 삶이다.’고 기독교 윤리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 무엇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순간 여기 살아있음을 자각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나와 함께 생명을 나누고 있는 존재들이 있음을 감사하줄 아는 그런 사람은 이미 행복한 존재이다. 만물은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미 그는 지구에 보내어진 축복과 선물의 존재이다. 그런 이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기독교인들은 많지만 그리스도인은 희귀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꼭 붙잡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는 시대이든지 희귀한 법이다.


에니어그램 도형을 최초로 완성한 라몬
룰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인간의 정신능력들-지성(intellectus), 의지(voluntas) 또는 사랑(amor), 기억(memoria)-을 완전한 방법으로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통찰했다. 인간의 책임은 생각과 행위를 ‘완전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실현시킬 때만 완성에 가까이 가게 된다. 이러한 완성에로의 전진은 언제나 하나의 의무이며 결코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람은 언제나 배우는 자, 희망하는 자 그리고 탐구하는 자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사람이 되어가는 동물이다.’고 한 룰의 정의는 사람을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지상에 온 자신의 역할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고정되지 말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이성적인 영혼은 창조물과 창조주 사이에 있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