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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



히브리서 4장     인간의 안식, 하나님의 안식

 

히브리서 저자는 안식의 축복을 귀로만 듣지 말고 참된 믿음의 생활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삶을 오늘살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안식(安息)이란 단어는 숨을 편히 쉬는 것, 숨쉴 식의 한문 자는 마음 심이 스스로 자 밑에 있다. 안식은 심신의 편안함, 또는 휴식을 의미한다. 이런 종류의 안식은 그리스어에서 카타파우시스, katapausis’로 표현되는 이른바 여호수아의 안식이다.(4:8) 반면에 4:9절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안식은 사빠티스모스, sapatismos’로 표현되고 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셨다. (2:2) 하나님의 안식은 피곤해서 쉬는 인간의 안식이 아니다. 창조의 완성과 창조의 결과에 대한 만족을 누리는 안식이다. 인간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는데 다음 날 바로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였다. 아담에게 주어진 안식은 힘든 노동의 결과에 의한 안식이 아니었다. 그냥 먼저 받은 은혜로써 삶은 안식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축복의 소식이다.

 

@ 인생의 실패 - 안식 없는 삶


현대인의 삶은 낮 밤 없이 바쁜 안식 없는 삶이고, 그 결과 자기 자신을 소외시킨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안식 없는 삶이야말로 실패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이생에서 정신줄 놓고 바쁘게 산 사람은 영원한 안식마저 놓치게 된다고 한다. 인간의 삶이 왜곡되면서 인간은 하나님의 안식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바로 이 상징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이다. 그들은 안식이 없는 노예 생활에서 안식의 땅 가나안으로 불러냄을 받았지만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안식을 스스로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19:3-6, 23:20-33)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허무하게 죽었을 뿐이다. 바로 여기에 오늘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지혜가 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안식에 있다. 구약과 신약은 하나님의 안식에 대한 약속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이 안식을 누리라는 하나님의 초대와 인도하심을 거부하고 사십 년을 돌고 돌다가 끝난 광야의 교훈을 말씀하고 있다. 그들의 실패는 안식에 대한 약속을 귀로만 들었을 뿐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데 있었다.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신앙생활은 안식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진정한 안식인 하나님의 안식을 구체적이고 실전적으로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다.

저자는 3장에서 안식의 의미를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것으로 말하였다. (3:12,18즉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지리적 공간의 의미로 한정하였다. 그러나 4장에서는 인간의 안식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안식을 말씀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인도한 가나안은 참된 안식의 땅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안식에 대한 모형이며 그림자와 같은 안식일 뿐이다

지구에서 사는 동안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완벽한 안식처는 존재할 수 없다. 헬 조선이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외국에 이민 간 사람들은 후회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노력과 수완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안식은 시간과 함께 없어질 안식이고 불확실한 미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의 이성적 차원과 시간의 범위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안식이 있음을 전하고 있다. 참된 안식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열려 있다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물을 언제 받을 것인가? 그 선물을 받기 위한 결단의 시간이 바로 오늘이다. 3:15절에서의 말씀이 4:7절에서도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다. 오늘, 지금의 시간은 다시 올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기 위한 결단의 시간이다.

 

@ 안식은 믿음으로만

 

많은 사람들이 안식을 잘 먹고 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적 안식은 영혼과 마음과 몸의 전인적 회복이다. 빈둥거리는 안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나를 찾는 데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안식은 인간적 기쁨을 찾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안식이 아니다.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여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새로운 질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가슴의 평화를 회복하고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삶의 회복이다. 주일의 예배는 이 세 가지 회복의 시간이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부정적인 10명의 정탐꾼들의 말을 들었던 데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믿었을 뿐,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수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간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일시적인 안식도 믿음이 있어야 주어지듯이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도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구원한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여호수아는 헬라어로는 예수이다. 율법에 근거한 안식도 믿음으로 주어지고, 복음에 근거한 거룩한 안식도 믿음으로 주어진다. 믿음은 귀에만 있지 않고 발에 있어야 한다. 예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이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