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6장 - 완성(9)에서 완전(10)으로 가는 길
2021.05.23 23:42
20210523
히브리서 6장 완성(9)에서 완전(10)으로 가는 길
숫자는 1에서 9까지이다. 그것은 완성을 향해 가는 길이다. 어느 분야든지 9단을 최고의 경지라고 칭송한다. 그러나 그 경지는 알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새와 같다. 새는 새이지만 자신이 날아야 할 하늘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바로 그 때 알 껍질을 깨고 10으로 나가는 영혼의 출애급이 있어야 한다.
예수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요한 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인물이라도 그 보다 크다.”(마태 11:11)
이 말씀은 ‘알 껍질 안의 새는 제 아무리 독수리라 해도 알 껍질을 깨고 나가 자신의 하늘을 날고 있는 참새 만도 못한 법이다’ 라고 새겨도 좋을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지구에 몸을 입고 있는 동안, 자기 완성의 차원에서 완전을 향해 도약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데 집중되고 있다. 이 가르침이 ‘거듭남’이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알 껍질을 깨고 나가야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을 누릴 수 있다. 거듭남은 9에서 10으로, 즉 완성에서 완전으로 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 성숙한 경지 – 신앙의 최종 목표
히브리서 저자는 초보적인 배움의 단계에만 머물지 말고 성숙한 경지(텔레이오테스, 완전함)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한다. 이 말은 조금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자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최종 목표에 도달하자는 것이다. 마라톤 선수가 골인 지점을 향하여 달려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냥 열심히 만 달리면 그것은 의미 없는 짓이다. 달려야 할 사람이 제자리 뛰기만 열심히 한다면 그것은 바보들이 하는 짓에 불과하다.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맹목적인 열심에 대해 살펴보고 자신의 의도와 목표를 분명히 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1에서 9까지의 여정이 있고 9에서 10으로 도약해야 할 사람이 1이나 2의 수준에서만 머물고 있다면 그는 초등학교만 평생 다니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초보적 교리에만 머물지 말고 성숙한 차원으로 나가야 한다고 권면한다. 초보적인 교리는 집으로 말하면 기초와 같다. 그것은 첫째, 회개와 믿음이다. 회개는 삶의 방향 전환이다. 내가 의지하는 것이 물질이었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으로 바꾸어지는 것이다. 또한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믿는 것이다. 내 인생의 최종 승리는 하나님께 있고, 나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고, 지구에서의 삶이 끝나면 영원한 안식처로 이끄실 것을 믿는 것이다. 둘째는 세례와 안수이다. 세례는 공적으로 과거의 인생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세례는 교회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공적 의식이다. 셋째는 부활과 심판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를 살리심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눌려있는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피와 살을 가진 인간들입니다. 예수께서도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의 권세를 가진 악마의 세력을 쳐부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만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공포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간들을 구원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히2:14~15)
복음은 사는 것과 죽음에 대해서 자유롭게 해방된 인생을 사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왜 별것도 아닌 것들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있을까? 인간의 성격은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 가진 것들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 등 수천수만의 두려움들이 순간마다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그러나 믿음은 어떤 파도가 오든 그것들은 모두 나를 이끄시는 섭리의 틀 안에서 나에게 배움의 재료가 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좋은 일, 나쁜 일은 내 생각의 분별일 뿐 배움의 세계에서는 일체가 은혜이다.
@ 경고와 격려(4~12)
저자는 밭의 비유적 표현을 통해 독자들이 은혜의 놀라운 체험을 했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들은 자주 내리는 비를 받아 많은 곡식을 소출한 밭과 같았다. 그럼에도 그 은총을 내던지고 가시나무와 엉겅퀴로 뒤덮인 쓸모없는 밭처럼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겠는가를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9절에서 보는 바처럼 자신의 경고가 단죄가 아니라 격려하기 위함임을 밝히고 있다. 그는 독자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보다 더 좋게 하고 보다 깊은 믿음의 차원에 들어서기를 염원하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따분해하거나 영적으로 태만하거나 무관심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오직 강한 믿음과 인내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은 사람들을 본받으십시오.”(12)
저자는 약속을 상속받은 사람으로서 아브라함은 예로 들고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고 후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할 것을 약속하셨다(창 15:5, 22:17).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끈기있게 기다렸다. 그 기다림의 결과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기다릴 줄 아는 인내는 어느 시대에나 믿음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다.
아브라함은 80대에 하늘의 별을 보았다. 땅만 보던 시야가 영원과 근원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는 영혼의 신성한 불꽃을 자각한 사람이었다. 손님들을 극진하게 대우하고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막아보려고 끝까지 노력했던 사례에서 보는 바처럼 신성의식을 자비로운 삶으로 표현하는 인생을 살았다. 인간의식의 성장은 영성과 신성이란 주제로 연결되어 진다. 그것은 목구멍으로 들어간 음식이 소화되어 얻어진 에너지에 의존하여 살고 죽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 삶으로부터의 초월이다.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는 땅만 바라보는 불행한 존재는 시한부 인생으로서 시들고 죽지만 하늘에 소망을 둔 행복한 존재는 번성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어디에서 가르마가 타지는가?
육체적 생명력만이 실재라고 믿는 사람들은 밥의 힘으로 살아가지만 심령을 통해 전해지는 영혼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영성과 신성의 차원이 무한히 열려 있음을 안다. 그들의 밥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말씀으로 창조된 이 우주의 로고스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신성한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하늘이 주시는 영적 생명 에너지의 통로로써 이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들이다.
자기 완성(9)과 자기 초월(10)의 길을 가기에 인생의 시간은 너무나도 짧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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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알껍데기와
콩깍지가 늘 문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