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389942
  • Today : 619
  • Yesterday : 1104


'등나무' 아래 서면

2010.06.09 22:44

구인회 조회 수:2054

11.jpg 

 

등나무 아래 서면 
                   
                         홍해리

   

밤에 잠 깨어 등나무 아래 서면

흐느끼듯 흔들리는

보랏빛 등불이

여름밤을 밝히고,

하얀 여인들이 일어나

한밤중 잠 못 드는 피를 삭히며

옷을 벗고 또 벗는다


깨물어도 바숴지지 않을

혓바닥에서 부는 바람

살 밖으로 튀어나는 모래알을

한 알씩 한 알씩

입술에 박아놓고 있다.

끈끈하고 질긴 여름나무

불꽃을

온몸에 안고 있다.


그을음 없이 맨살로 타던

우리는

약쑥 냄새를 띄기도 하고

소금기 가신 들풀잎마다

바닷자락을 떠올리기도 한다.

죽고 또 죽는 남자

등은 그렇게 뻗어 올라서

여름을 압도하고

알몸으로 남는 칠월의 해일

바람만 공연히 떼미쳐 놓아

우리의 발밑까지 마르게 한다.


78.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7 file 구인회 2010.02.01 2230
126 범의귀[바위취]의 겨울나기 file 구인회 2010.02.04 2229
125 만년청 萬年靑 file 구인회 2009.12.28 2227
124 꽃밭을 돌아서가면 송화미 2006.06.13 2227
123 황혼의 거처 구인회 2009.10.15 2223
122 맥문동 麥門冬, Liriope platyphyllla [1] 구인회 2009.08.29 2217
121 마른잎 사이로 수선화도....... file 도도 2009.03.13 2216
120 수인이와 노랑민들레 file 구인회 2011.05.07 2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