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교회 석은(碩隱) 김용근 장로님을 추모하다
2019.05.18 16:41
석은(碩隱) 김용근 장로님을 추모하다
이병창(시인. 진달래교회 목사)
5.18을 맞이해서 광주 5.18 기념공원에 자리한 김용근 장로님 흉상을 찾아가 불재의 국화를 옮겨 심었다. 진달래교회 교우로 인연을 맺은 지 30여 년이 되었건만 아버지를 가슴 속에 안고 침묵의 세월을 살아온 김만진 집사와 동행했다. 전주고와 연세대 농구 감독으로 활동한 김만진 집사는 1년 전에야 아버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아버지를 추모하는 제자들이 5.18 기념 공원에 흉상을 세웠다고(2017.10.29). 나는 놀랍기도 하고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작년에 김만진 집사 부부와 함께 아버님이 귀향해 농사지셨다는 강진 작천마을에 찾아가 1980년 5·18 때 제자 윤한봉·정용화·김남표·은우근을 숨겨주었던 현장을 살펴보면서 그 시절의 사연들을 듣게 되었다. 수배 1호였던 윤한봉은 미국으로 밀항했고 나머지 제자들은 아버지와 함께 상무대에 끌려가 6개월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가부좌로 하루종일 꼼짝 못하고 앉아 있는 고문의 시간을 보냈고(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 6월) 그 후유증으로 얻은 심근경색으로 그토록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69세로 타계(1985.5.22)하셨다는 담담한 고백은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면회 한번 할 수 없었던 그 엄혹한 시절, 옥고를 치르면서 받은 수모는 일제 치하에서 치른 옥고 보다도 더 큰 고통으로 가슴에 엄습했으리라고 헤아려진다.
김용근 장로는 어린 날 목포에서 열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서 5년제인 평양 숭실학교 2학년에 편입(1933년 4월)하여 1937년 3월에 졸업했다. 이때 짧은 기간이지만 윤동주 시인(한 학기)과 문익환 목사(두 학기)와 함께 재학했고 기숙사 생활도 같이했다. 16살에 단신으로 평양까지 찾아가 공부하고 재학 중일 때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앞장서 하고 졸업한 직후에도 일제 치안유지법 위반죄로 6개월의 투옥을 겪은 사실을 보면 김용근 장로의 결기가 어린 시절부터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숭실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6년 안창호 선생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이 민족을 위해 사는 길은 고향에 가서 돼지 한 마리만이라도 전문적으로 기르는 것을 공부해라. 전문적으로 돼지를 길러가는 그 속에서 바로 민족의 현실에 기여할 힘이 나오지 않겠느냐."라는 가르침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장로님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연희전문 시절에는 총독 암살단을 조직한 혐의 등으로 2년 동안 옥고를 치렀고 6.25 당시엔 국군에 입대해 나라를 지켰다. 해방 후 연세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수학하고 서울 경복고, 전주고, 광주고, 광주제일고, 전남고에서 국사와 세계사를 가르쳤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작천교회 장로로 임직하다가 소천하신 장로님은 민족의 수난 역사와 함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로운 삶을 끝까지 지켜낸 분이다. 광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하던 인간 백정과 하수인들을 떠올리면서 이 아침에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장로님의 어록을 옮겨 적는다.
“내가 가르치고 싶은 교육은 '내가 누구냐'하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하여 인간이 가진 천부적인 권리를 스스로 발견해 주장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1987년에 항일독립운동 관련 독립유공자로, 5·18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었다. 1997년 가을, 장지인 강진 작천 선영에서 광주 망월동 5·18 민주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제자들은 기념사업회를 통한 다양한 학술 활동과 함께 지난 1995년부터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제정해 스승의 뜻을 활발하게 잇고 있다. 장로님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알기 원하는 분들은 ‘나를 깨운 역사 강의’(석은 김용근 선생 기념 문집, 석은 김용근 선생 기념사업회 저. 여름언덕 2017.10.28.)을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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