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단원고 학생의 엄마입니다. 서명 부탁드립니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 9반 한 학생의 어머니가 외쳤다. 어머니가 입은 남색 반팔 티셔츠 뒷면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이름이었다. 어머니는 딸의 이름에 하트를 그려 놓았다.

   
▲ 세월호 유가족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전국을 순회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하기 위해서다. 7월 10일 수원역에서 유가족들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에 직접 나섰다. '세월호 가족 버스'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고 있다. 7월 2일 진도를 시작으로, 서부권과 동부권으로 나뉘어 서울까지 올라온다. 지금까지 동부권은 창원, 김해, 부산, 울산, 포항, 대구를 거쳤고, 서부권은 순천, 광주, 전주, 대전, 세종, 아산, 천안을 거쳤다. 한 반이 2박 3일씩 일정을 감당하고 다음 반과 교대한다.

세월호 참사 86일째인 7월 10일, 서부권을 순회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수원역으로 향했다. 단원고 2학년 9반 희생자 유가족 스무 명 정도가 10시 30분 수원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미 아침 7시 30분부터 수원 시내 고등학교와 대학교 앞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난 후였다. 기자회견에서 2학년 9반 유가족 대표 박 아무개 양 어머니가 말했다. 왜 직접 서명운동을 하는지. 수척해진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이 됐다.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몇 시간 동안 아무도 우리 아이들을 구해 주지 않았습니다. 침몰한 후에도 저희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진도에서 하루 이틀 삼일 기다렸습니다. 하루 이틀 됐을 때는 '우리 아이 살아있겠지, 살아있을 거야' 했지만, 사흘 나흘 지났을 때는 '시체라도…데리고 가자', '살아있지 않아도 되니까…시체라도 데리고 가자', '시체라도 제발 꺼내 주세요', 많은 엄마들이 울고불고…. 아이들 나올 때마다 엄마들이 '좋겠다', '시체라도 데려 가서 좋겠다', 엄마들이 서로 '좋겠다, 좋겠다' 하고 그랬습니다….

저희는 알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알고 싶지만, 아무도 그 일에 대해서 수사를 하는 것 같지 않고. 국정조사, 똑같습니다. 수박 겉핥기입니다. 특별법 꼭 제정해서, 우리 아이들, 그렇게 간 우리 아이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도 밝혀야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들이 바라는 겁니다. 너무 지치고 힘들고 아이들이 보고 싶어도 이 거리에 나온 이유가, 서명을 받는 이유가, 다른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처럼 똑같이 당할까 봐, 그거 방지하려고 저희들이 서명을 받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이 오늘 서명 많이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가족들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저희들에게 힘이 되어 주세요. 앞으로 갈 길이 너무 멉니다. 힘듭니다."

   
   
▲ 유가족들은 수원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원고 2학년 9반 유족 대표 어머니가 마이크를 잡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진실을 밝혀 달라는 서명에 동참하는 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들이 왜 이렇게 울면서 호소해야 하나. 누가 이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었나. 유가족이 직접 서명을 받으러 다녀야 하는 현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슬픔을 감당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 지나가는 시민들도 이들이 단원고 학생들의 어머니 아버지일 거라는 생각은 쉽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학부모들이 기자회견을 하는데도 행인들은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4·16 특별법은 어떤 내용일까. 특별법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가 목적이다. △유가족들이 참여하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진상조사위원회 설치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전 과정 조사 △성역 없는 조사 대상 △모든 정보 국민에게 공개 △위원회의 수사권·기소권 확보 △결과에 대한 철저한 책임 △재발 방지 시스템 구축 등이다. 이런 당연한 일을 요구하기 위해 100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한가.

   
▲ 아버지들은 피켓을 들고 행인들 옆에 따라붙으며 적극적으로 서명을 요청했다. 2학년 9반 유가족들이 입은 남색 티셔츠 뒤에는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자회견이 끝나고 희생자 가족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수원역사와 아주대병원에서 서명운동을 벌였다. 지역 시민 단체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탰다. 희생자 아버지들은 피켓을 들고 행인들 옆에 따라붙으며 적극적으로 서명을 요청했다. 많은 시민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음료수나 먹을 것을 사 가지고 와 힘내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들이 호소해도 이어폰을 낀 채 무심한 눈빛으로 지나가는 행인도 많았다. 손짓 하나로 무시해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다가갔다. 이미 사람들의 무관심에 닳고 닳은 사람들 같았다.

   
▲ 기자회견을 마친 유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수원역과 아주대병원에서 서명운동을 벌였다. 사진은 수원역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유가족들. ⓒ뉴스앤조이 구권효
   
   
▲ 많은 시민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음료수를 사 오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런 작은 관심이 유가족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교회 다니는 게 부끄러워 자기 머리를 쥐어박고

유가족들의 다음 목적지는 화성시 기아자동차 공장이었다. 오후 3시 노동자들이 교대하는 시간에 맞춰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속전속결로 서명을 받아야 한다고 인솔자가 설명했다. 한 시간 남짓한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유가족들과 봉사자들은 버스에서 쪽잠을 청했다.

오후 2시 반께 공장에 도착해 서명운동을 벌일 채비를 했다. 아버지들은 간이 책상을 나르고 어머니들은 서명 용지를 정리했다. 저쪽에서 버스 한 대가 오더니 하늘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내렸다. 티셔츠 뒤에는 역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단원고 2학년 5반 희생자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이었다.

   
   
▲ 화성 기아자동차 공장으로 이동했다. 아버지들은 간이 책상을 설치하고 어머니들은 서명 용지를 준비했다. 몇몇 자원봉사자가 도와줬지만, 희생자 학부모들은 이런 준비도 직접 한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2학년 5반 어머니 아버지들이 합류했다. 5반 학부모들은 하늘색 티셔츠를 입었다. 뒤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준비를 마친 공장에는 살짝 긴장감이 감돌았다. 입구에서 책상을 펴놓고 서명을 받는 팀, 주차장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 서명을 받는 팀, 이따가 노동자들이 퇴근 버스에 타면 막간을 이용해 버스 안에서 서명을 받는 팀으로 나뉘었다. 한 사람이라도 놓칠 세라 빈틈없이 준비했다.

근로자들을 기다리면서 2학년 5반 이 아무개 군의 어머니와 짧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기독교 신문 기자라는 것을 밝히자, 어머니는 자신도 크리스천이라고 답했다. 반갑다는 뜻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게 너무 창피하다며 자기 머리를 쥐어박았다.

"개신교는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에 적극적이지 않아요. 안산 합동 분향소에 여러 종교 단체가 와서 천막을 치고 있는데, 개신교 천막은 있는지 없는지 눈에 잘 띄지를 않아요. 천주교는 거기서 매일 미사를 해요. 불교 정토회도 서명운동에 큰 도움이 되어 주었고요. 안산에 교회가 정말 많거든요, 큰 교회도 많고. 희생자 학부모 중에도 안산 지역 교회 다니는 사람이 70명 정도 될 거예요. 그런데도 교회들이 소극적이니 답답하죠.

교회는 자꾸 모금을 하더라고요. 우리는 돈 필요 없어요.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철저하게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나서 서명을 받는 거고요. 정부가 분명히 잘못한 부분이 있는데도 목사님들은 정부를 비판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큰 교회 목사님들은 오히려 두둔하는 모습까지 보이잖아요. 유가족에게 막말이나 뱉어 대고. 그런 거 보면 힘이 빠져요.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요.

기독교가 참 잘못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기독교인 대통령 되게 해 달라고는 그렇게 기도하더니, 결과는… 휴…. 정치인도 절반 이상이 크리스천인 거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우리 바람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지…."

한숨이 잦았다. 어렵게 시작한 국정조사도 파행을 겪고 유가족들의 의견은 계속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그들의 속은 이미 새까맣게 타 말라 비틀어져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것일까. 신앙적으로 힘들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풀어야 할 숙제가 많죠, 하나님께. 지금은 원망하지는 않아요. 무엇이든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답을 얻으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겠죠, 긴 시간이…."

   
   
▲ 유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삼삼오오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서명을 요청했다. 적극적으로 서명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한 근로자가 서명을 하기에 손이 모자라자, 어머니가 모자를 들어 주면서 서명을 요청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시간이 되자 예상대로 공장 근로자 수천 명이 물밀 듯 쏟아져 나왔고, 유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은 한 시간 반가량을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서명을 받았다. 이때만큼은 기자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서명 용지를 들고 이쪽저쪽 뛰어다녔다.

사람들이 전부 빠져 나가고 공장은 다시 잠잠해졌다. 유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서명 용지를 정리했다. 근 두 시간 만에 15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 퇴근 시간이 되자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땡볕에서 한 시간 반가량 정신없이 서명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사람들이 잦아들자 어머니들의 손은 더 분주해진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서명 용지를 모으고 정리했다. 이날 공장에서만 15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유가족들을 인솔하는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관계자로부터 서명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서명자가 350만 명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이번 열흘간의 세월호 가족 버스로 60만 명의 서명을 기대한다고 했다. 그중 불교 정토회가 14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주었다며, 서명운동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해 주었다고 말했다. 반면, 개신교의 영향은 그다지 체감하지 못한다고 했다.

   
▲ 공장 한쪽에 자리잡은 불교 정토회 부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관계자는, 정토회가 지금까지 14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주었다고 전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9반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다들 땡볕에서 서명을 받느라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이날 낮 최고 기온이 34도였다. 그래도 유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서명을 많이 받았다며 맑게 웃었다. 이들은 다시 수원역으로 이동하면서 쪽잠을 잤다. 역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시민 단체와 촛불 문화제를 함께했다. 세월호 가족 버스는 오는 12일 저녁 7시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보고대회 및 해단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0만 인 서명운동은 온라인으로도 참여 가능하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홈페이지(sign.sewolho416.org)에서 직접 서명도 가능하며, 서명 용지도 내려받을 수 있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는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신문 광고비를 모으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7월 31일까지 아래 계좌로 1만 원 이상을 송금하면 참가할 수 있다.

- 계좌번호 : 국민은행 479001-01-248152 정현곤(세월호대책회의)
- 문의 :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sewolho416.org), 02-6712-5267, sewolho416@gmail.com  

   
▲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세월호 특별법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시스템 구축을 목적으로 한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서명에 동참할 수 있고, 서명 용지도 내려받을 수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