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는 70세에 은퇴한다. 나는 4년 전 70의 나이에 은퇴하면서 생각했다. 영어로 은퇴란 단어는 retire이다. 그런데 이 단어에서
악센트를 앞에 붙이면 의미가 달라진다. RE-tire가 되면 타이어를 다시 갈아 끼운다는 의미가 된다. 말하자면 인생을 새롭게 출발한다는 의미의
단어가 된다. 내가 은퇴할 즈음 종합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를 일러 주는 자리에서 담당의사가 일러 주었다.
“목사님 그 연세에
당뇨도 없으시고 고혈압도 없어 건강상태가 좋으십니다. 목사님 지금은 수명이 늘어나서 90세 이전에 죽으면 조기사망입니다. 앞으로 20년 이상 더
사실 테니 인생설계를 잘 세우십시오.”
담당의의 이말이 내 마음에 닿는지라 곰곰이 생각하였다. 평균치로 따져 20년을 더 살게
된다면 그에 맞추어 인생설계를 하여야겠구나. 그간에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만족스럽게 살아오지 못하였는데 이제부터나마 제대로 살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장고(長考) 끝에 3가지를 다짐케 되었다.
첫째는 그간에는 목사로서 영적인 일에 소홀한 바가
많았으니, 남은 날에는 영성(Spirituality)을 강화함을 최우선으로 삼아야겠다.
둘째는 영성을 강화 집중하려면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니, 체력강화에 관심을 기울어야겠다.
셋째는 지난 40년간의 목회를 되돌아 볼 때에 너무 많은 일을 하느라
제대로 하지를 못한 바가 있으니 남은 날에는 선택과 집중을 원칙으로 하여야겠다.
이들 3가지 다짐으로 3모작(三毛作)인생을 다시
시작하여 4년째에 이르렀다. 지난 4년간에 가장 잘한 것은 건강관리, 체력관리에 정성을 쏟았기에 이곳 동두천 산골짜기로 들어오던 때에 비하면
마치 딴 사람인 만큼이나 건강하여졌다.
건강이 좋아지게 되니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감을 가지고 일하게 되니 일에 만족도가 높아져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오늘 오후에도 수도원 둘레길을 한 바퀴 돌며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갈렙의 기백과 도전정신을 생각하였다. 여호수아 장군의
동료였던 갈렙은 85세에 이르러 젊은 사람들이 공략하지 못하는 헤브론 산지 공략에 도전하며 다음같이 말하였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여전히 강건하니...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성읍들이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여호수아 14장 10~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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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늙어서도 일하여 그 이름을 천추에 빛낸 인물이 있다. 사무엘 선지이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암흑기라 불리는 사사시대
말기에 태어나, 왕정시대 초반까지 활약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나라와 백성들의 삶이 몹시 곤궁하였던 시대를 살면서, 평생을 청빈하고 투명하게
살았다. 그래서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일생이 가장 빛 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노후의 삶이
향기로웠기 때문이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한 후 고향 라마로 낙향하였다. 두메산골 고향으로 간 그는 그곳에서 여느 사람들
같았으면 장기나 뜨고 손자들 재롱이나 보며 한가로이 살았을 나이에, 가장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에 헌신하였다.
<라마-나욧>이란 이름의 공동체를 세워 뜻 있는 젊은이들을 모았다. 그들과 함께 살면서 낮에는 노동하며 자립경제를
이루었다. 밤에는 함께 토론하며 민족의 나갈 길을 논의하고 함께 기도하며 하늘의 뜻을 물었다. 사무엘이 노후에 세운 이 공동체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가장 빼어난 인물이 다윗 왕이다. 젊은 날에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숨어 다녀야 하였던
다윗은 마지막에 사무엘을 찾아 왔다. 사울 왕에게 다윗을 숨겨 준 사실이 알려지면 목숨을 건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무엘은 그런 사실을
불문하고 다윗을 <라마-나욧>에 받아들여 자신과 함께 살면서 그의 멘토가 되었다.
<나마-나욧> 공동체에서
다윗은 사무엘이 죽을 때까지 머물렀다. 공동체 밖에서는 사울 왕이 보낸 군인들이 다윗이 밖으로 나오기만을 노리고 있었다. 사무엘의 국민적 지지와
권위 탓에 차마 공동체 안으로까지 들어가 다윗을 잡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사무엘이 숨을 거두게 되자 다윗은 도망하여 <아둘람
굴>이란 곳으로 숨어들었다.
다윗이 <아둘람-굴>에 숨어 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펴져 나가자 새 시대, 새
역사를 창출하는 일에 헌신코자 하는 뜻을 품은 젊은이들이 모여 들었다. 그렇게 모인 무리가 400명에 이르렀다. 그들에게서 다윗왕국이
탄생하였다. 위대한 왕 다윗과 다윗왕국이 탄생할 수 있었던 뿌리는 사무엘이 늙어서 세운 <라마-나욧> 공동체의 공로이다.
이 시대에도 사무엘 시대처럼 젊은이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 주는 자리가 필요하다. 대학이 그 일을 하지 못하고 있고, 교회가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나라가 그 일을 못하고 있고, 기업이 그 일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사무엘 같은 늙은이가 나타나야 한다. 비록
늙어서라도 시대의 젊은이들을 위해 일하기로 나서는 늙은이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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