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말씀 기고문- 한국교회 발등에 떨어진 코로나의 불똥
2020.09.24 09:24
복된 말씀 기고문-
한국교회 발등에 떨어진 코로나의 불똥
이병창 (시인. 진달래교회 목사)
요즈음 코로나의 불똥이 한국교회에 떨어졌다 할 만큼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맛을 잃은 소금처럼 전락해 버린 교회에 대한 공격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들불처럼 번져 가고 있다. 교회를 향한 사회의 지탄은 그동안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채 누적되어온 한국교회의 치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교회가 죄송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으로 착잡하다. 어떤 결과가 나타날 때는 그만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교회는 교회로서의 존재 기반인 ‘그리스도 예수’를 잃어버렸고 동시에 아빠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잃어버린 데 있다.
예수가 사라졌다는 말은 예수의 말씀과 그에 따른 실천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위기는 이웃 사랑을 잃어버리고 천당 가기 위한 수단으로, 또는 이 땅에서 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한 도구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왜 믿느냐고 물어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그 구원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서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 천국은 언제 가시는 겁니까?라고 물으면 죽은 뒤에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예수는 ‘ 너희에게 천국이 가까이 왔다’ 또는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지금 여기 와 있는 천국을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육체의 종말 이후에 자신이 갈 천당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출발하고 뿌리를 내린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잃어버리는 심각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내가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단순 구조의 믿음은 믿음의 결정권, 즉 천국에 가고 안가고는 나에게 달렸다고 하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갖게 하고 무엇보다 이웃을 향한 신앙의 실천력을 상실하게 했다. 예수 믿는 목적이 죽은 뒤에 천당 가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를 추구하고 그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는 종교로서의 근본 주제에 대해서는 무관심, 무지, 무능력하게 된 것이다.
천국은 지금 여기에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깨달음 뒤에 오는 당연한 결과이다. 신념의 믿음이 아닌 은혜에 대한 깨달음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존재 기반을 나무의 뿌리처럼 예수에게 둔다. 그것을 밑힘의 믿음이라고 한다. 예수를 바라보기만 하는 믿음이 아니라 그분처럼 되어 보고 살아보려는 실천적 믿음이다. 지옥 가는 것이 무섭고 두려워하는 믿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누리는 삶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다스림(바실레이아)이 임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천국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현장에 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사라지고 인간의 두려움에 뿌리를 둔 천당이 신앙의 결과인 양 왜곡되었다. 바로 이 왜곡이 무지한 대중을 상대로 종교 장사꾼들이 기생하는 숙주가 된다. 천당이란 지구적 차원의 3차원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이다.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수평적 크로노스의 시간 관념에 매몰된 의식 세계의 산물이다. 예수가 말씀하는 ‘때’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땅 속의 애벌레가 나비나 매미가 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었다. 그것은 인간 의식의 도약이고 새로운 인류의 탄생이다.
마태복음 13장에는 7개의 ‘하늘나라는 ~~~와 같다’는 비유가 등장하고 있다. 즉각적인 말씀의 실천을 강조하는 마태복음의 하늘나라는 죽은 뒤에 가는 미래의 천국이 아니다. 미래에 찾아야 할 하늘나라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다. 마태복음의 비유는 자신 안에, 원인 인자로써 예수의 말씀으로 심어진 하늘나라의 씨앗을 잘 성장시키는 되어 감(Becoming)의 과정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에 자신을 열고 그 분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하늘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가고 오는, 또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공간 차원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이다. 그에게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이미 임재하셨기 때문에 죽음을 벗어나 영생을 살고 있다.
원인 속에 결과가 있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면 종말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믿음의 결과를 강조한다. 그러나 예수의 하늘나라 복음은 원인 속에 결과가 처음부터 실현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다. 지금 속에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있다. 그것은 인류가 갇혀 있는 3차원의 지구적 시간과 공간의 무덤을 열고 나간 차원이다. 이에 대해 다석 유영모는 ‘나는 내일 죽어 어제 묻혀 오늘 산다’라고 말했다. 비유하자면 애벌레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수평적 시간(크로노스)을 사는 존재이다. 그러나 나비가 되면 수직으로 날아오르게 된다. 시간 차원에서 영원의 하늘을 날아오르는 신성한 존재가 된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고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생아들임이 분명하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인간 존재 역시 오늘 나비처럼 깨어났다면 그동안 더러운 거름더미 속에 있었던 일들조차 선물이 된다. 나비는 애벌레가 죽은 뒤에 되는 존재가 아니라 고치 짓고 나가는 변형의 과정이 있기만 하면 된다. 애벌레의 미래는 지금 나비로 완성될 때 의미가 있다. 바로 여기에 지구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지금 하늘나라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미래가 두렵고 특히 육체의 죽음 뒤에 대해서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믿음의 원인도 영적 성장의 과정도 없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투사하는 하늘나라는 예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천국일 뿐이다. 그것이야말로 불신이고 미신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예수가 하신 일이고 나는 그 분을 믿으니까 덕분에 천국을 가게 될거라는 환상이야말로 헛된 환상이다.
예수는 천국이라는 씨앗이 떨어져 그 씨앗에서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거쳐가는 사람은 당연히 천국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선한 나무에서 선한 열매가 맺어지고 악한 나무에서는 악한 열매가 맺어지게 된다. 씨앗과 열매 사이에는 공간과 시간의 간격이 있다. 씨앗이 1이라면 열매는 10이다. 그 사이에 2에서 9까지의 사이가 있는데 우리가 몸을 입고 지구에 보내어진 이유는 그 사이의 성장과정을 경험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농부이신 하나님이 기쁨으로 수확할 수 있는 알차게 익은 영혼으로의 성장이 우리의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지구에서의 삶은 영원한 생명을 결정 짓는 너무나도 중요한 기회로 주어졌다. 인간은 결코 남보다 더 크고 많은 밥그릇 챙기려고 지구에 온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나를 알기 위해서, 나 아닌 것을 나로 아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하고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지혜의 눈을 떠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 예수를 알아보는 눈을 떠야 한다. 복음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왔지만 그 분을 알아보고 말씀을 깨닫는 자들이 없었음을 전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의 교회 현실도 이천 년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그 반복을 하고 있지 않은가? 교회에 다니는 분들은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예배당에 가는가?”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야 한다. 덕진구의 작은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시는 전주시장에게 광화문에 버스 세 대 보냈다는 어느 교회의 장로가 유권자 많은 자기교회로 옮겨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했었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시장님답게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고 한다. 이런 사례는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인간들이 환전하는 상을 둘러 엎어 버리고 채찍을 들어 야단치셨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정치, 경제, 사회의 힘 있는 장사꾼들이 우글대는 이른바 큰 교회 목사들이 나라를 흔들어대는 꼴을 보여주고 있다. 요즈음 그런 자들의 활개 짓에 대한 심판이 코로나로 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광화문 정치 세력에 동원된 개신교 극우주의의 문제는 이제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로 대두되었다. 개신교인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야 할까? 예수는 마지막 날까지 교회는 가라지와 곡식이 함께 자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지상의 교회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자랄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수확할 때까지 악한 자들을 제거할 권리를 교회에 주지 않으셨다. 그것은 가라지를 뽑아버리면 곡식마저 함께 뽑히기 때문이다. 가라지를 주의 깊게 살피고 무성하게 자라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관리 차원의 노력은 있어야 하지만 아예 뽑아버리는 것은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인내심과 지혜가 필요하고 가라지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제 예수의 외로운 음성에 귀를 기울이자
십일조 헌금에 대하여 성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삼 년째 되는 해 곧 십일조를 바치는 해가 되면, 네 모든 소출에서 열의 하나를 떼내어 레위인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에게 나누어 주고 그것을 너희 성 안에서 실컷 먹게 하여라. 그리고는 너희 하나님 야훼 앞에 아뢰어라. ‘주께서 분부하신 대로 거룩한 것을 집에서 모두 퍼내어 레위인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주께서 분부하신 것을 잊지 않고 어김없이 다 행하였습니다.’" (신명기 26장 12~13절)
한국교회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먹이고 배부르게 하는 일에 성도들의 헌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가? 이 물음 앞에 정직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수백억 돈을 싸놓고도 굶주린 이웃을 외면하면서 더 큰 건물 짓는 데 몰두해온 행태가 멈추어지지 않는다면 교회를 향한 비난은 더욱 거세어지다 못해 교회를 삼켜 버릴 것이다.
교회는 부와 권력을 구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 아니다. 가상의 환상으로 꾸며진 천당을 가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모이는 곳도 아니다. 교회는 온 인류가 한 아버지의 자식임을 알고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을 기르는 곳이다. 진리를 구하고 하늘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헌신하는 자들의 공동체로 회복되어야 한다.
성 프란치스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천국에 가려고 예수를 믿지 않는다. 또 지옥 가는 것이 두려워 예수를 믿지도 않는다. 나는 오직 그 분이 좋아서 그 분을 따를 뿐이다. 예수께서 어디를 가시든 나는 그분의 뒤를 따를 뿐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신앙은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데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자. 지금 천국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자만이 천국의 열매를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인간은 육체를 나로 아는 인식의 차원에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위대한 영적 존재이다. 주기도의 첫 부분처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다. 그 하늘은 내 안에 있고 만물과 우주 공간 전체에 편만하다.
인간은 신성의 존재로 깨어나야 하고 한 아버지의 자녀로서 상대가 누구이든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외쳤던 예수의 외로운 음성에 이제 한국교회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잃어버린 예수를 찾고 하늘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예수도 하나님도 없는 예배당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자리,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짓 목자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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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날, 머리에 붓는 찬 물 한 바가지처럼
늘 신선한 깨달음을 주는 말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