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2015.04.30 21:34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마태 6: 25-27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고 예수는 말씀하셨다. 땅에서 모이를 먹고 있거나 나무에 앉아 노래하고 있는 새를 보라 하지 않고, 왜 허공을 날고 있는 새를 보라고 말씀하셨을까? 새는 두 날개로 난다. 만약 한 날개로만 나려고 하거나 두 날개를 접는 순간 새는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다. 새는 순간순간 양 날개를 통해 균형을 잡고 기류를 타고 비행을 한다. 날개는 고정화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결국 공중에 나는 새는 지금과의 관계를 날개를 통해 만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새가 나라면 나는 나의 하늘을 어떤 방식으로 날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중에 날 생각조차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데카그램도형은 인간의 에너지 시스템을 새의 양 날개로 비유하고 있다. 그것은 긍정과 부정성, 음과 양의 상극적 에너지로써 그 둘이 나를 통해 통합적으로 만나게 될 때 인간의 삶은 떠오르게 된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이 시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신이 싫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무조건 배격하는 데 있다. 그것은 자신의 날개 한 쪽을 부정하는 일이다. 그 때 인간은 지금 이 순간 주어지는 모든 삶의 조건들을 거부하게 된다.
모든 영혼의 스승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진정한 자기 자신과의 관계이며 그 관계의 핵심은 지금 이 순간의 관계에 있음을 통찰해 주고 있다. 에고의 영역에서는 순간순간 나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 바로 이 점에 대해 구르지에프는 이런 통찰을 전해 주고 있다.
“인간은 영원불변하고 변하지 않는 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각각의 생각, 각각의 기분, 각각의 소망, 각각의 감각이 ‘나’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어떤 개별적인 ‘나’도 없습니다. 대신에 수백 수천의 작은 ‘나’가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모르고 접촉하는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 적대적이고 상호배타적이며 공존할 수 없는 경우가 흔합니다. 매 분 . 매 순간 마다 인간은 나를 말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나’는 매번 다릅니다. 바로 직전에는 어떤 생각이었고 지금은 어떤 욕구이며 , 지금은 어떤 감각이고 , 지금은 또 다른 생각입니다. 인간은 다수입니다. 인간의 이름은 군대입니다. ”
지금을 살지 못할 때 삶은 미래의 염려로 휩싸이고 과거의 회한으로 도피하게 된다. 그 결과 감각이 죽게 된다. 인간의 삶이 죽어가는 것은 주변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무신경해지는 데 있다. 보는게 보는 것이 아니고 듣는 게 듣는 것이 아니다. 철이 바뀌는지 옆에 사람이 죽어가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감동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 나는 이미 죽어있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한다. 공자는 중용에서 인체의 9구멍으로 온전히 감각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인간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진정한 인간이란 진정한 나로서의 나, I AM을 자각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이 군대 마귀들린 사람 같은 나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어 떤 것들을 나로 아는 세상에서 나를 나로 아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 삶은 공중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다. 새는 날아야 새 다운 맛이 있듯이 염려의 사슬에 나를 묶지 않고 이 순간을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사람이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영적인 수행 집단들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나로 바로 서는 수련의 방법으로 다양한 기법을 사용해 왔다. 수피의 회전춤의 경우, 돌고 있는 나 자신의 몸을 분리해서 바라보게 하는 눈을 뜨게 하는 탁월한 수련이다. 몸과 의식의 분리를 경험하는 데 이 방법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기독교 교파중에 퀘이커교와 셰이커교가 있다. 그들은 몇 시간이고 몸을 강렬하게 진동시켜 의식과 몸을 분리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춤과 몸의 진동과 절실한 찬양은 몸이 만들어내는 동일시의 환상에서 깨어나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신과 함께 존재하게 방법들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매 순간 먹고 마시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체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고자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그것은 햇빛을 모아 불을 일으키는 과정과 같다. 그 때 우리의 의식은 어떤 변형이 일어나게 된다. 불이 일어나게 되고 고목에서 새싹이 나듯이 생명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터져나오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순간순간 마다 선물로 허락하는 시간과 공간과 모든 만남을 은혜로 허용하는 삶의 수용이다. 믿음은 수많은 ‘나’가 사라지고 그 분이 나의 중심에 중요하게 자리잡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제대로 가는 핵심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다가오는 대상들을 잘 보고 잘 듣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지금 그대 앞에 누가 있는가. 그대는 그 대상을 어떻게, 어디까지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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