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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는 생각 - 김흥호

2016.09.06 07:30

물님 조회 수:11975

생각 없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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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달래 꽃그늘 9월 24일 독서모임에서는 '서양철학 우리 심성으로 읽기' 1권을 다룹니다.  참고로 선생님의 저서를 소개한 신문기사 하나 소개합니다.  



김회평/논설위원 (문화일보)

“종결어미만 가다듬어도 글 전체의 느낌과 분위기가 달라진다.” 군더더기 없는 글쓰기로 이름난 국문학자 정민 (한양대) 교수의 글 잘 쓰는 요령이다. 우리말 종결어미는 ‘∼(이)다’ ‘∼있다’ ‘∼것이다’ 체로 대별된다. ‘∼(이)다’는 기본체다. ‘∼있다’는 글이 늘어져 긴장감이 없어지는 약점이 있다. ‘∼것이다’는 결정타 느낌을 주지만 자주 쓰면 짜증나는 글이 된다. 요컨대 ‘∼있다’와 ‘∼것이다’는 가끔 힘을 줄 때만 적절히 섞어 써야 한다는 말이다. 정 교수가 이런 글의 전범으로 든 책이 김흥호의 ‘생각 없는 생각’(1999년)이다. 이 책을 다 읽어봐도 ‘∼있다’와 ‘∼것이다’ 투를 찾기 힘들다.

지난주 93세로 타계한 김흥호(전 이화여대 교수) 목사는 살아 있는 철학자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기독교는 물론 유불선(儒佛仙)과 서양철학을 두루 섭렵해 ‘철학자들의 스승’으로 불렸다. 1965∼2009년 45년간 이어진 이화여대 대학교회의 일요강연은 일반인들까지 줄을 섰다. 성경·주역·양명학·화엄경·노자 등 동서 고전을 넘나들며 큰 맥락으로 풀어내는 강의는 난해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강의를 바탕으로 나올 김흥호 사상전집은 150권이나 된다.

‘생각 없는 생각’은 그의 생각이 압축된 저작이다. 달리 보이는 개념도 그를 거치면 하나가 된다. “사람이 뭉치면 삶이 되고 삶이 터지면 사랑이 된다.” 삶의 핵심은 사랑이고, 사람은 사랑을 하는 삶을 꾸려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의 생각은 상식을 넘어선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 봄이 온다…영원 속에 찰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찰나 속에 영원이 있는 것이다.”

그의 언어는 쉬우나 뜻은 깊다. “어디에서나 주인이 되면 거기가 천국이다. 주인이란 책임을 지는 것이다…천국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다. 책임을 지는 순간 천국은 온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이 축복이다. “오늘 속에서 내일 이상의 것을 보고 웃는 여유를 가진 자만이 내일의 노예가 되지 않고 내일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영생은 순간에 있다. 순간이란 시간을 초월한 순간이다.” 그는 사물을 하나로 보고, 뒤집어 보고, 맥락으로 보고, 무심하게 본다. 그런 통찰을 거쳐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생각이 끝났을 때 가장 깨끗해지며 입장을 얻었을 때 가장 거룩해진다.” 생각이 없는 생각들이 판치는 대선 정국에 그의 ‘생각 없는 생각’이 새삼 샘물처럼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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