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교회에 보내는 편지 3. 초인
2022.02.07 13:29
고등학교 땐 무기력했습니다. 같이 술래잡기하던 친구가 아동학대로 격리되었고, 친구의 아버지께서 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고, 아는 언니가 돈을 빌리러 왔고,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그 와중 전 공부를 명목으로 도움이나 위로 없이 그저 문제집만 붙들고 있었습니다. 다만, 언젠가는 힘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 바람이 닿았던지 경각산에서는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계가 없는 초인의 길에 대해서요. 그전에는 그저 [ 치대-치과의사-결혼-아이-노후준비 ]가 전부인 흔한 한국인의 닫힌 결말을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치과는 그저 지구학교 과목 중의 하나이고, 저는 얼마든지 다른 과목들을 수강할 수 있는 열린 결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수강신청을 하면 정말 우연히 그런 기회가 생겼거든요. 연극, 가족, 무술, 중국어, 데카그램 같은 과목들 말이예요. 그리고 배움은 힘 뿐만 아니라 지혜와 사랑도 함께 길러주었어요.
아! 초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니 제가 좋아하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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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노동자-관리자- 엘리트 계층의 지배 구조가 형성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것만으로는 무너지게 된다.
국가는 이질적인 존재를 필요로 하는데 그게 초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플라톤도 어떻게 철인을 교육시키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10년 동안 사회적 역경 속에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밀어 넣는 것이다.
그럼 돌연 하나의 기적으로 동굴 밖으로 나오는 철인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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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호 선생님의 사색 중 < 플라톤의 ‘나라’ > 편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물론, 제가 지금 초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저 초인이 역경이 만든다는 생각 자체가 현실의 통념 너머의 다른 선택지의 존재를 알려줬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이전에는 과외 세 개에 학업까지 병행해서 힘들다는 친구에게 공허한 위로밖에 못 했거든요. 아무리 노력해도 상속자들이 받는 이자가 더 많고 자신은 결국 그 밑에서 일한다며 하소연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근거가 없었어요. 반면, 부모님을 잘 만난 친구는 자기 삶은 이미 정해진 대로 병원을 물려받고 여자친구마저 허락 받고 사귀며 결혼은 정해준 짝과 해야 된다며 답답하다고 호소하는데 역시 ‘스스로 길을 선택하라’해도 말에 힘이 없었습니다. 둘 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는 결국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이제는 전래동화처럼 어쩌면 숨구멍을 뚫어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요. 누구나 원하는 걸 선택해서 결국 살아남으면 아예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물론 아직 제가 하면 그 말의 위력이 약하지만, 그래도 창호지에 구멍을 뚫을 때 꼭 강한 힘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치과에도 ‘내가 다 늙었는데 죽는게 낫지 치료 받아서 뭐해?’하는 등 자기를 한계짓는 사람들을 많이 뵈었어요. 능숙한 치과의사가 되면 치아 뿐만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 영혼의 초인을 잠재우는 까만 덮개에도 구멍을 뽕뽕 뚫어줄 예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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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사람들 영혼의 초인을 잠재우는 까만 덮개에도 구멍을 뽕뽕 뚫어줄 예정이랍니다.'
그 구멍이 나에게 뚫리면
나도 심봉사 예수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