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락, 「고요의 입구」
2013.01.08 10:28
신현락, 「고요의 입구」
개심사 가는 길
문득 한 소식 하려는가
나무들 서둘러 흰 옷으로 갈아입는다
추위를 털면서 숲 속으로 사라지는
길도 금세 눈으로 소복하다
문득 한 소식 하려는가
나무들 서둘러 흰 옷으로 갈아입는다
추위를 털면서 숲 속으로 사라지는
길도 금세 눈으로 소복하다
여기에 오기까지 길에서 나는
몇 번이나 개심(改心)하였을까
한 송이 눈이 도달할 수 있는 평심(平心)의 바닥
그것을 고요라고 부를까 하다가
산문에 서서 다시 생각해 본다
몇 번이나 개심(改心)하였을까
한 송이 눈이 도달할 수 있는 평심(平心)의 바닥
그것을 고요라고 부를까 하다가
산문에 서서 다시 생각해 본다
어느 자리, 어느 체위이건 눈은 불평하지 않는다
불평(不平)마저 부드러운 곡선이다
설경이 고요한 듯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불평(不平)마저 부드러운 곡선이다
설경이 고요한 듯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허지만 송송 뚫린 저 오줌구멍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마을의 개구쟁이들이 저지른 저 고요의 영역 표시
경계 앞에서도 어쩔 수 없는 방심(放心) 뒤에 진저리치던
나의 불평이란 기실 작은 구멍에 불과한 것
하물며 개심(開心)이라니!
마을의 개구쟁이들이 저지른 저 고요의 영역 표시
경계 앞에서도 어쩔 수 없는 방심(放心) 뒤에 진저리치던
나의 불평이란 기실 작은 구멍에 불과한 것
하물며 개심(開心)이라니!
그 구멍의 뿌리 모두 바닥에 닿아 있으므로
길은 불평의 바닥이다
불평하지 않으며 길을 다 갈 수는 없다
그러니 애써 한 소식 들은 척 하지 말자
눈이 내렸을 뿐 나는 아직 고요의 입구에 있는 것이다
길은 불평의 바닥이다
불평하지 않으며 길을 다 갈 수는 없다
그러니 애써 한 소식 들은 척 하지 말자
눈이 내렸을 뿐 나는 아직 고요의 입구에 있는 것이다
● 시_ 신현락 - 1960년 경기 화성 출생. 시집으로 『따뜻한 물방울』『풍경의 모서리, 혹은 그 옆』과 논저로『한국 현대시와 동양의 자연관』이 있음.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53 | 보내소서~힘 되도록~ [2] | 하늘꽃 | 2008.06.06 | 4479 |
252 | 웅포에서 [1] | 하늘꽃 | 2008.06.24 | 4480 |
251 |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1] | 물님 | 2011.10.18 | 4482 |
250 | 초 혼(招魂) [1] | 구인회 | 2010.01.28 | 4483 |
249 | 보고 싶다는 말은 | 물님 | 2012.06.04 | 4486 |
248 | 웅포에서 | 요새 | 2010.12.05 | 4487 |
247 | 사십대,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 | 운영자 | 2008.06.10 | 4490 |
246 | 삶이 하나의 놀이라면 | 물님 | 2012.04.07 | 4492 |
245 | 그대 옆에 있다 - 까비르 [2] | 구인회 | 2012.02.15 | 4500 |
244 | 가지 않은 길 | 요새 | 2010.03.19 | 4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