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처녀의 비유 - 둔감힌 인생에 대한 경고와 희망
2020.03.10 03:23
열 처녀의 비유 - 둔감힌 인생에 대한 경고와 희망
마태 25: 1-13 . 숨 이병창 (진달래교회)
열 처녀의 비유는 어리석은 다섯 처녀와 슬기로운 다섯 처녀를 대비해서 보여주고 있다. 슬기로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둔감하거나 또는 에매모호하게 살지 않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깨어있는 사람이다. 10(Ten, Deca)이란 1에서 9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통과(Open)한 전체 (All)를 나타내는 상징 수이다. 이런 관점에서 두 그룹의 처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두 종류의 존재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둔감한 사람들과 깨어있는 사람들이다. 둔감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혼돈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깨어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정원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예수는 이 비유를 통하여 한번 주어진 인생의 기회를 어떤 방식의 삶을 선택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동시에 ‘나’는 지금 어떤 존재 상태에 있는가를 살펴보라고 묻고 있다.
먼저 인생이란 ‘나는 지금부터 착하게 살거야.’ ‘나는 오늘부터 용기 있는 사람이 될거야’ ‘나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살거야’ 라고 결심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결심은 변화의 시작일 수는 있지만 결론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성격의 뿌리, 무의식의 뿌리는 매우 깊어서 내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 예수는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문제 그 자체가 없어지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해 주고 있다. 애벌레는 만나는 모든 것이 장애물이지만 나비가 되면 그 장애물들은 놀이터가 되는 방식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의 진수는 거듭남이다. 알에서 병아리가 나오듯이, 징그러운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인간 역시 존재의 카이로스적인 도약이 일어나는 존재이다.
열 처녀는 인간은 모두 삶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존재임을 비유하고 았다. 하지만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만 가지고 있었을 뿐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 기름 없는 등이란 내용 없는 껍데기이지 실제로는 무용지물이다. 그것은 ‘나’ 아닌 것들을 나로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의 비유물이다.
무더운 사막 기후 지방에서의 혼인 잔치는 밤에 이루어졌다. 옛날 이스라엘에서의 혼인 잔치 역시 밤에 했는데 신랑이 매우 늦게 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것은 신부 몸값을 두고 일어나는 흥정이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신랑을 맞이 하기 위해 필요한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아예 기름이 부족한 상태인지 조차 모른 채 무감각하게 시간을 보낸 멍청한 신부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신랑이 도착한 뒤에 허둥대며 지혜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달라고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9절)
비유란 비유를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어떤 원관념이 있다. 비유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처녀들은 자기 자신과 삶에 무감각한 사람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자신의 존귀함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들, 타인에게 기대어 의존하려 하는 사람들, 자신의 문제를 누군가가 해결해 주리라 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상이다. 그들은 자신의 등을 확인해야 했고 자기 발로 마을에 가서 기름을 사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이 지나고 난 뒤에 후회하는 게으른 사람들이었다. 뒤늦게 깨닫고 기름을 사 왔을 때는 이미 문은 닫혔고 신랑은 ‘나는 그대들을 모른다’(12절)고 말했다,
뒤늦은 후회는 과거에 대한 후회이다. 그것은 과거에 살고 있는, 다시 말하면 지금을 진정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 삶에 대한 증거이다. 진정한 삶이란 지금 여기에 머무는 삶이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환상 사이에서 우리는 수 없이 길을 잃고 있다. 그래서 예수는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 그러니 여러분은 깨어 있으시오. 여러분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13절)
깨어있는 눈을 떠서,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내 인생의 등 안에 기름이 채워지게 된다. 그런 사람은 지구를 떠날 때 후회가 없다. 그런데 되는 대로 막살다가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 때 내 인생의 문은 후회만 남긴 채 영원히 닫혀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삶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회로 주어지고 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는 나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예수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하여 경고와 희망을 동시에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눈만 뜨면, 삶으로부터 깨어나기만 하면 진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씀한다. 삶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은 삶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그 배움으로 지혜를 얻는 사람이다. 성서가 말씀하는 배움이란 암기가 아니라 경험이며 통찰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익숙한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애벌레의 눈과 나비의 눈이 차원이 다르듯이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경험을 통하여 지금까지의 나를 넘어서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생 수업료를 내는 고통이 있다. 골드로 상징되는 지혜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피눈물이 있다. 그래서 금빛 지혜를 얻는 것은 고난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는 몸을 입고 지구에 왔다. 이 지구는 경험을 통하여 황금빛 지혜를 얻기 위한 수련의 도장이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그 이는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통하여 복종을 배우셨습니다‘ 히브리서 5:8
우리는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을 통하여 스스로 불러들인 고난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 때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탄식을 하곤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후회의 반복이 아니라 후회를 통하여 진정으로 깨어있는 눈을 떠서 내적 진실에 한 걸음 더 들어서는 일이다. 후회의 반복은 어리석은 처녀의 방식이지만 그 반복의 사슬을 끊어 내는 방식은 슬기로운 쳐녀의 방식이다. 슬기로운 사람에게는 좋은 일 나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울 일만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삶이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는 ’시작‘의 은혜가 있다. 지혜를 향한 우리의 멈추지 않는 걸음이 진정한 사랑으로 나를 안내하고 지혜의 기름으로 내 등잔을 넘치도록 채워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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