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가라
2020.05.14 09:50
-진달래공동체 인터넷 예배, 2020, 3,29
일어나 가라
마태복음 2: 13-23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당연한 일상이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정부 시책을 놓고 따를거냐 말거냐 하는 이 문제를 놓고 묵상하다가 주어진 말씀이 오늘의 본문이다.
마태복음에는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지시를 하는 내용이 세 차례 등장하고 있다. 마태복음에는 마리아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 마리아와 관련된 내용은 누가복음 1장에 한 차례 등장한다.
동방박사와 관련된 성탄 사건은 우리에게 멋진 광경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간 다음에는 처참한 광경이 펼쳐진다. 헤롯은 군대를 보내어 인근의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을 모조리 죽였고 부모의 울부짖고 애통해 하는 소리는 하늘을 찔렀다. 헤롯의 군대가 오기 전에 급박한 소식이 천사를 통해 요셉에게 전해졌다. ‘이집트로 일어나 가라’. 요셉은 즉각 일어나 피난길을 떠났다.
요셉은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한 마리아 때문에 고민이 많았을 터인데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천사의 고지를 받았고 또 아기와 산모를 데리고 먼 이집트로 피난 가라는 고지를 받았다. 요셉을 둘러싼 사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집트에서 조금 숨 돌릴만 하니까 또 다시 천사의 기별이 왔다. ‘이스라엘로 일어나 가라’
요셉은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 이집트로 가야만 했다. 그리고 또 원위치다. 이게 무슨 일일까. 살다 보면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긴박하게 물러나야 할 때가 있다. 어느 때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피난처가 필요할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난처는 임시로 필요한 공간이지 끝까지 ‘여기가 좋사오니’하고 오래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다시 내 소명의 자리,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으로 이끄는 길을 안내하시기 위해 떠나라고 말씀 할 때도 있고 돌아가라 할 때도 있다. 그리스어로 ‘일어나라’는 말은 ‘깨어나라’는 뜻이 있다. 계란 속에서 병아리가 되어있다면 껍질을 깨고 나가는 것이 생명의 길이다. 그런데 껍질 안에서만 살아온 병아리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길이 없다. 그저 답답하기만 할 뿐.
일어나라 또는 깨어나라는 말은 나 자신과 주어진 삶의 현실에 대해 깨어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성서에서 일어나라는 말은 부활과 연관이 있다. 성서에서 부활은 일어나다( anastasis)와 일으켜졌다 (egerthe,되살아났다)는 두 단어로 말해지고 있다. 부활은 내가 취해 있는 환상(잠)과 갇혀 있는 의식(알 껍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일어나야만 생명의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성서는 ‘일어나라’와 ‘가라’는 두 단어가 한 쌍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 일어났으면 내가 가야 할 길을 향해 떠나가야만 한다.
떠나간다는 것은 힘든 여정을 나타낸다. 그것은 나의 익숙한 생각과 공간과의 이별이며 난관을 통과하고 극복하는 여정이다. 보호받지 못하는 생소한 이국땅으로 요셉은 황급히 떠나야만 했다. 그곳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 생활 했던 이집트이다. 요셉은 꿈 속에서 천사의 말을 듣고 떠났다고 한다. 누군가 멱살을 잡고 말을 한다 해도 떠나기 쉽지 않은 길을 떠난 것이다. 어쩌면 요셉은 깊은 사색과 내면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코로나는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향해 길을 떠나라는 기별이라고 생각한다. 통계에 의하면 식량이 없어 기근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하루에 35000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유독 코로나에 세계가 놀라는 것은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은 남이고 코로나에 죽을 수 있는 가능성에는 나도 포함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두려움은 현재까지 누려왔던 삶의 방식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그럼에도 천사는 우리에게도 단호히 말씀하고 있다. 일어나 가라, 깨어나 길을 떠나라. 그래야 아기 예수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시점에서 어떻게, 어디로 일어나 떠나야 할 것인가?
코로나 사태로 아프리카에는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모든 가족들이 친교활동이 늘고 가족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자각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일상의 중요성이 자각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천사의 긴급공지 앞에서 행동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않되는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우리는 기가 죽거나 두려움에 눌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의 몸과 맘과 얼 빛이 더욱 빛나게 해야 한다. 이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본분이고 살길이다. 코로나는 인류의 잠을 깨워 새로운 평화의 길을 향해 길을 긴박하게 떠나도록 하는 은혜로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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