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의 하나님에서 코로 모시는 하나님으로
2020.12.22 08:16
마태복음 21: 23- 입술의 하나님에서 코로 모시는 하나님으로
사회가 안정화 된다는 것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각종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구조화 되는 데 있다. 사회 각 분야의 종사자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가면서 자기의 조직을 발전시켜가고 또 다른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사회적 영향력이 큰 힘 있는 집단들은 다른 조직들을 자신의 하부 조직으로 편입시키려 하게 된다. 예전에는 사회조직의 상층부에서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이 세상을 지배했다. 하지만 지금도 음으로 양으로 그 틀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의 사회적 틀 속에서 주어진 권위와 그 틀을 깨고 넘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본문은 요즘 말로 하면 신학교도 졸업 안한, 자격증도 없는 예수가 왜 하나님의 말씀을 성전에서 가르치는가?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하는가? 하고 대사제와 원로들이 따져 물었다는 내용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격증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종교는 진리에 대한 탐구와 믿음의 헌신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어야 한다. 돈 주면 따는 자격증 가지고 영혼이 깨어나는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식 신학교라고 하는 곳도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교회가 영적 장사꾼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은 자격증을 남발하는 장사꾼들이 여기저기 곳곳마다 신학교 간판 걸고 영업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진정한 권위
진정한 영혼의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하늘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낸 사람이었다. 문자의 경전만이 아니라 온 우주 만물 속의 로고스를 읽어 낸 것이다. 나는 이런 관점에서 ‘당신의 복음서’라는 시를 적은 바 있다.
오늘은 순창과 임실복음서를 읽었다.
겨울산 골짜기마다
지나가는 칼바람
나는 귀 기울여 말씀을 들었다.
너를 괴롭히지 말라
오직 네 자신을 평화롭게 하라
그 어느 것도 거부하지 말라
네가 불러들여 온 고통을
그만 놓아 보내거라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복음서 책갈피마다
두 번 다시 밟지 않을
제 발자국마다
당신은 말씀으로 살아계십니다.
- 당신의 복음서 -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늘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고 그것을 돌판에 새겼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에게 임했고 모세는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능력자가 되었다. 그가 받은 첫 말씀은 “ 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다.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출 20:2)” 였다. 이 말씀은 힘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모든 권능의 근원인 하나님께 구해야지 인간 욕심을 투사하여 빚어낸 우상에게 구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우상은 헛된 그림자와 같기 때문에 나무나 돌, 흙으로 만든 것들에게 절하고 비는 것은 자신을 그림자로 만드는 일이다. 즉 내가 나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일이 우상 숭배이다.
인간은 무엇을 누구에게 구하느냐가 그 사람이다. 지금 현재 자신의 의식보다 더 지고한 의식을 갖고자 한다면 이 주제를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을 누구에게 구하고 있는가? 가장 높은 차원의 의식이 있다면 하나님의 의식일 것이다. 하나님의 의식에 도달하려면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에 영으로써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이에 대해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서 귀중한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 (요한 4:24) . 그렇다면 영적이란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숨결로 우리는 산다.
창세기의 아담은 하나님의 숨결이 그 콧속으로 들어가면서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존재였다. 성서의 안간관은 인간은 하나님의 숨에 의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그 숨이 들어오는 소리가 하나님의 이름임을 자각할 때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데 있다. 내 생명의 주권이 온전히 하나님께 있음을 자각할 때 그는 영적인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존재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록된 4자의 자음(YHWH)은 입소리가 아닌 콧소리이다. 숨결로 오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형상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무지한 이스라엘 대중과 선지자의 싸움은 바로 우상과의 영적 싸움이었고 그 맘몬신과의 투쟁은 자본주의 시대인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수없이 불러대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성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출 20:3).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은 입술에 있지 않고 코에 있기 때문이다. 입술로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일은 죄를 범하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숨결로서 부르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이다. 나는 입술로 하나님을 부르는 시대가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이름을 ‘숨’이라고 했다.
숨의 숫자 - 7 일곱
숨의 수비학적 숫자는 7이다. 일곱은 하늘의 수 3과 땅의 수 4를 더한 완전의 수로써 한 사이클 또는 옥타브의 완성수이다.. 창조의 과정은 6일 째 완성되었고 7일째 되는 날은 안식일이 되었다. 7일은 하나님의 안식일이자 사람을 위한 안식일이다. 이 날은 이기적 자아를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날이 아니라 보편적 자아를 위해 사용하는 날이다. 나의 가장 아름답고 고운(곱) 것을 일으켜 세우는(일) 날이다.
바쁜 일과 속에서 일하느라 잊었던 숨을 찾는 일이고 신의 형상으로서의 존엄한 자기 자신을 챙기는 날이다. 숨결로 오시는 하나님을 맞이할 때 우리는 고요해지고 더 높은 의식의 상승이 일어나게 된다. 나는 서양의 기독교가 동양의 기독교 나아가 지구적 기독교로 가는 길이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현재의 한국교회 현실은 그리스도 예수를 담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그릇이다.
에고의 작은 그릇을 깨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힘과 지혜와 사랑으로 채워 주신다. 힘은 남성적 에너지라면 지혜는 여성적 에너지의 상징이다. 힘과 지혜의 양 날개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이라는 연민의 가슴이 열리게 된다. 이 세 가지의 은혜가 정삼각형처럼 균형 있게 임하기를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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