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토르소」
2012.03.27 07:27
이장욱, 「토르소」
손가락은 외로움을 위해 팔고
귀는 죄책감을 위해 팔았다.
코는 실망하지 않기 위해 팔았으며
흰 치아는 한 번에 한 개씩
오해를 위해 팔았다.
나는 습관이 없고
냉혈한의 표정이 없고
옷걸이에 걸리지도 않는다.
누가 나를 입을 수 있나.
악수를 하거나
이어달리기는?
나는 열심히 트랙을 달렸다.
검은 서류가방을 든 채 중요한 협상을 진행하고
밤의 쇼윈도우에 서서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보았다.
악수는 할 수 없겠지만
이미 정해진 자세로
긴 목과
굳은 어깨로
당신이 밤의 상점을 지나갔다.
헤이,
내가 당신을 부르자 당신이 고개를 돌렸다.
캄캄하게 뚫린 당신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치는 순간,
아마도 우리는 언젠가
만난 적이 있다.
아마도 내가
당신의 그림자였던 적이.
당신이 나의 손과
발목
그리고 얼굴이었던 적이.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83 | 세월이 가면 | 물님 | 2015.02.20 | 1787 |
282 | 바람의 길목에서 / 이중묵 [3] | 이중묵 | 2009.01.24 | 1790 |
281 | 어디 숨었냐, 사십마넌 | 물님 | 2009.08.31 | 1790 |
280 | 가지 않은 길 | 요새 | 2010.03.19 | 1790 |
279 | 절망은 나무 벤치 위에 앉아 있다. | 물님 | 2021.12.09 | 1790 |
278 | 낯선 곳에서 살아보기 | 물님 | 2015.05.19 | 1792 |
277 | 봄밤 - 권혁웅 | 물님 | 2012.09.20 | 1794 |
276 | 사로잡힌 영혼 [1] | 물님 | 2018.09.05 | 1794 |
275 | 벼 - 이 성부 [1] | 물님 | 2011.10.03 | 1799 |
274 | 고독에게 2 | 요새 | 2010.03.21 | 18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