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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을 짓고 있는가?(9.13)

2009.09.14 16:44

구인회 조회 수:5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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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집을 짓고 있는가?”

 

 

바울사도는 자기 안에 성전을 짓는 사람이 있지만

자기 안에 감옥을 열심히 짓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도 있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지혜는 무엇인가?

이는 내 인생이 어떤 바탕 위에 집을 짓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주여, 주여 부르고 아무리 공을 쌓아도 의미가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은 나를 발견하는 거다.

내 육신이 사라지면 완벽하게 끝나버리는 것을 그런 헛짓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화를 내는 등 사람 사는 패턴이 다 그렇다.

일상생활 속에서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평화가 깨진다.

예배당 안에서도 경상도니 전라도니 하며 출신과 지역을 따질 지경이니...

그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닌가?

어리석은 사람이란 인생을 맛없이 사는 사람을 가르키기도 한다.

인생을 맛없이 사는 사람이 곧 모래 위에 집짓고 사는 사람이다.

아름다움에 무감각하고 빈둥거리며 무미건조하게 사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이는 스스로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내가 누구인지 하느님이 나를 보내신 까닭을 알 수 있겠는가?

무뎌지고 무감각해지니까 알아차리지 못한다.

에니어그램도 감각을 깨우는 것이다. 보게 하고 듣게 하는 것이다

감각이 죽어버린 사람은 삶에 대해 죽어버린 사람이다

 

본회퍼 윤리학의 핵심은 삶의 모든 조건들이 은총이라는 거다.

살아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내 눈이 볼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고

또 말씀 속에서 실천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삶이다.

살다보면 별별 일이 다 많은 데 어떤이는 불평의 소리로 살고

또 어떤이는 그 일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깨달음의 소리로 산다.

매사에 스트레스로 받아드리는 사람이 있고

매사를 따뜻한 가슴으로 받아드리는 사람이 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자기 안에 치명적인 상처를 만든다.

또 반석 위에 집짓는 사람과 같이 은총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도 있다.

이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별스런 일이 있다 해도

평화와 존재의 집이 무너지지 않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남의 눈치나 보고 살면서 많이 가지면 무얼 하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평생 원수로 삼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프로이드의 꿈 해몽을 보면 집이 무너지는 꿈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사건을 암시 한다.

 

산상수훈의 핵심은 집을 새로 지으라는 거다.

이는 삶의 패턴, 의식 상태를 묻는 거다

바람에 무너지는 집을 짓고 있는지 어리석음 위에 집을 짓고 있는지

자기 자각이 있어야 한다.

내 자신의 내적 상태 위에 깨어있는 의식 위에 집을 지어야 한다.

피타고라스는 깨달음을 얻은 자, 진리에 되돌아 온자는 영웅이라고 말한다.

깨달음을 얻는 일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인생을 송두리째 뺏기는 헛짓을 하는데 쓰면 않된다.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하고 가치있고 장엄하게 하는 것은 나를 깨닫는 거다

나를 깨닫는 것, 진리를 깨닫는 것, 하느님을 아는 것이 반석 위에 집짓는 것이다.

반석 위에 집 짓는 사람에게는 지옥이 없다.

성 프란체스코는 “ 내가 예수 믿는 것은 지옥이 두려워서도 아니요

천당 가려고도 아니요, 예수님이 좋아서 따라갈 뿐이다.” 고백하고 있다.

그런 의식이 존재하는 사람 속에 무슨 지옥이 있겠는가?

밥을 먹을 때마다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이 있지만

같은 밥을 먹어도 맛있게 먹는 사람이 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 자신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

설령 그곳이 지옥이라도 사랑의 에너지를 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복음의 출발은 행복이다. 행복한 사람은 반석 위에 집짓는 사람이요

가난한 것도 행복이요 모든 게 다 행복이라는 말씀이다.

밥을 굶어봄으로써 밥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이별을 통해서 만남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불행한 사람은 밥먹는 것도 불행하다.

자기가 밥먹기 싫으니까 다른 사람이 밥먹는 것도 짜증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에 불평인 사람들에게 뭐라 말씀하실까?

“우리 천당 네가 와서 지옥 되니까 네가 오면 안된다”고 하지 않으실까?

불행한 사람은 어디를 다녀도 그 어디에서도 불행하다

행복한 사람은 그 어디에서도 늘 행복하다

고운 마음으로 장미를 보면 꽃이 보이고 그렇지 않으면 가시만 보인다.

건강의 핵심은 부드러움이요 행복의 핵심은 가벼움이고

깨달음의 핵심은 고요함이다.

생명의 에너지가 차있는 사람이 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하느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사람답게

지혜롭고 좁은 길을 감에 있어

몸으로 체화되고 사랑의 에너지로 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길을 발견하고 그 길 가는 게 바로 고귀한 일이다.


 

   2009. 9. 13일      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