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황홀: 마리 로랑생’ 전시회
2017.12.22 23:56
‘색채의 황홀: 마리 로랑생’
서유진 (전북일보사)
‘잊혀진 여인은 가장 슬프다.’라는 시 구절을 남긴 시인이자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983~1956)전시회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지난 9일부터 내년 3월 11일까지 열리고 있다. 그림, 일러스트, 데생 등 160점 특별전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프랑스 파리는 ‘아름다운 시절(벨 에뽀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몽마르뜨 카페 ‘세탁선’에 모여 밤새도록 떠들고 마시며 예술을 논하던 때였다. 그 중에는 마리 로랑생을 비롯해 피카소, 마티스, 모딜리아니, 루소, 기욤 아폴리네르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마리 로랑생은 초기에 그곳에서 만난 야수파와 입체파 화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몇 년 후에는 그들의 화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계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곡선과 색상들을 활용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흐르는 듯 부드러운 곡선과 여성스럽고 우아한 색상을 사용했다. 로랑생은 주로 동화 속의 요정이나 아름다운 소녀들이 파스텔 색채로 환상이나 꿈을 꾸는 듯 감각적이며 신비로운 화면을 창조했다.
로랑생은 시대를 앞서갔다. 블루, 그린, 핑크 등의 색깔을 회색과 미묘하게 배합하고 심플한 디자인으로 현대적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한 색 블루와 사랑스러움을 상징하는 핑크 특히 산호색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우아함은 대비의 미묘함에서 시작된다.’를 구현했다.
로랑생 그림 속 여인들은 독특하게 보인다. 로랑생의 그림에는 눈썹이 없거나 옅게, 눈은 눈동자가 없이 타원형의 검은색으로 칠한 얼굴이 많다. 영혼의 창인 눈을 그렇게 그린 것은 자신이 사생아 출신임을 감추고 싶어서일까. 코도 분명치 않게, 입은 조그맣고 여성스럽게 그렸다. 그림에는 자연, 꽃, 새, 강아지 등을 등장시켜 더욱 환상적으로 보였다.
로랑생은 초상화를 주로 그렸는데 그 중에는 샤넬의 초상화도 있었다. 샤넬은 완성된 초상화를 보고 자신이 아니라며 로랑생에게 돌려보냈다. 샤넬은 초상화 속에서 머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 외롭게 일인용 의자에 앉아 당시 나이 40세밖에 안됐지만, 황혼 속 어둡고 지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과 고단한 삶을 이어온, 감추고 싶은 샤넬의 복잡한 내면을 로랑생은 압축해 표현했다. 이 작품은 로랑생의 걸작으로 꼽혔지만 아쉽게도 이번 전시회에는 빠졌다.
로랑생은 자신을 비롯해 다른 여인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지만, 다른 여인들의 초상화를 그려도 결국 자신을 그린 것이 아닐까. 생전에 로랑생은 발레단 의상과 무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시인으로서도 재능을 펼쳤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뮤즈이자 연인이었던 로랑생은 그와의 애절한 이별을 ‘잊혀 진 여인은 가장 슬프다’로 표현했다. 전시회에서 준비한 영상 ‘로랑생의 생애’ 중 말년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죽기 며칠 전까지 그림을 그렸던 로랑생은 하얀 드레스를 입히고 장미꽃 한 송이와 아폴리네르가 보낸 편지를 가슴에 안겨 묻어달라고 유서에 남겼다. 아름다움과 사랑을 추구한 73년의 삶을 로랑생은 그렇게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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