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學은 信學이 되어야 한다.
2011.03.28 17:31
神學은 信學이 되어야 한다.
도대체 神學이란 학문이 가능한가? 神學이 神에 관한 학문이라면 신학은 의미가 없다. 신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검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트겐 슈타인은 말하기를 “신학, 형이상학, 윤리학 등의 서적들은 모두 불구덩이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했다. 신을 부인해서가 아니라 신에 대한 학문은 학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학문이라는 것은 검증될 수 있는 것이라야 하는데 신학을 포함하여 형이상학, 윤리학 등의 학문은 검증될 수 있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 해야 하는 것은 신은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莊子>를 보면서 화들짝 놀란 일이 있다. 그것이 나에게 매우 심각한 신학적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장자 잡편 열어구편에 나오는 말이다.
“주팽만이라는 사람이 지리익이라는 사람에게서 천금의 가산을 바쳐서 3년간 龍잡는 법을 배워 완성했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朱泙漫學屠龍於支離益. 單千金之家. 三年技成. 而无所用其巧)
주팽만의 용잡는 기술이 왜 아무 소용이 없을까? 용은 가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가상의 용을 어찌 잡을 수 있겠는가?
신학이 신에 관한 학문이라면 신학은 屠龍之技(도룡지기/ 용잡는 기술)에 불과할 수 있다. 용이 가상의 동물이기에 잡을 수 없는데 하물며 신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神學이 학문이 되려면 신학은 마땅히 신에 대한 믿음의 학문 즉 “信學”이 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神學”이라는 용어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용어로서 마땅히 “信學”으로 용어가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信學은 신이 아닌 신에 관한 믿음의 학문이기에 信學은 인간학이다. 인간이 하는 학문이기에 또한 인문학이다. 카렌 암스트롱이라는 가톨릭의 여신학자가 <신의 역사>(A history of God)라는 멋진 책을 썼는데 책 제목에 유감이 있다. <신의 역사>가 아니라 <신에 대한 믿음의 역사> 혹 <신에 대한 인식의 역사>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信學은 인문학이기에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야 하는 학문이다. 신학은 결코 특수한 학문일 수 없다. 누구나 해야 하고 누구나 할 수 있기에 가장 보편적인 인문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학이 아직은 생소한 학문이다. 그래서 특별한 사람으로 기독교 성직자들이나 하는 학문으로 아는데 결코 그럴 수 없다.
신학을 특수한 학문으로 알기에 많은 이들이 “신학교가 너무 많다”, “신학생이 너무 많다”고 걱정을 한다. 의학이나 첨단 과학과 관련된 학문들은 그 직종에 종사하지 않으면 그가 배운 학문이 별로 쓸모가 없어 수급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지만 인문학은 학문 그 자체에 의미 있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 꼭 그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신학이야 말로 가장 보편적인 인문학이기에 학문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만일 신학을 기독교 성직자의 전유물처럼 여긴다면 그것이야 말로 밥그릇을 위한 학문이 되고 만다.
과거 서양 기독교 국가들의 대학에서는 학문의 대표격이 신학이었다. 과거 우리나라 조선에서는 성리학이 가장 보편적인 학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모든 대학에 신학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학과가 부담스럽다면 종교학과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중 하나가 신학의 부재다. 한국교회에서 신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기에 기독교가 미신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이 목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면 옳은 말이다. 눈에 보이는 교회의 몸 집 불리기에만 관심 있는 목회자들에게 신학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런데도 왜 목회자는 신학을 공부해야 할까? 신학은 무당이 되지 말라고,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걸어 논 제동장치다. 신학을 제대로 공부 할수록 제동장치가 확실하다. 그만큼 목사가 운신하는 폭이 좁아진다.
목사의 목회와 설교는 항상 신학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신학이 배제된 목회와 설교는 틀림없이 미신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강단은 신학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목회와 설교가 비신학적이어서는 안 된다.
많은 교회 목회자들이 신학을 공부한 평신도를 부담스러워 한다. 그것은 목사의 목회가 다소 비신학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점들 중에는 신학의 부재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성도들 중에 신학적 소양을 갖춘이가 적기에 목회자의 비신학적인 목회가 제지당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성숙하려면 신학의 대중화가 일어나야 한다. 신학교육이 더욱 보편화 되어서 평신도들 중에 신학을 공부한 이들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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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학교가 돈벌고 일자리를 얻는 기술을 가르치는 곳을 넘어서
영혼과 정신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물질의 풍요와 정신의 빈곤의 시대,
신선한 의미를 던져주는 말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