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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청춘

2011.04.20 11:23

삼산 조회 수:3104

잃어버린 청춘

- 이데올로기에 잃어버린 인생(2000.9)-

 

2000년 9월 2일, 비전향장기수 63명이 북으로 갔다. 세상에 이렇게 기구한 운명들이 또 있을까? 그들의 삶을 보면서 과연 인생이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살았을까? 왜 그렇게 살았을까? 그들은 과연 그토록 오랫동안 감옥에 있었어야 했을까? 그들의 잃어버린 청춘은 누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

 

1980년대 민주화를 열망하는 이들이 감옥에 갔다. 거기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의 실체를 알았다. 어떤 이는 전쟁포로로서 감옥에 있다. 어떤 이는 북한군의 종군기자로 참여하였다가 붙들려서 평생을 감옥에 살았다, 어떤 이는 지리산의 빨치산으로, 어떤이들은 남파 공작원으로 감옥살이를 했다. 그들은 형기를 다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안전법으로 계속 감옥에 있었고 어떤 이들은 출소한 이도 있었다. 출소한 이들은 계속적으로 감시를 받아야 했다. 그들도 생활을 하여야 하니 일자리가 필요하였는데 그들을 받아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빨갱이를 어느 누가 감히 일자리를 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오히려 경찰이나 정보기관에서 그들의 일자리를 잡아 주기도 하였다.

 

1991년에 서울에 이어 1993년에는 대전에도 그들을 위한 안식처가 마련되었다. 뜻있는 이들이 십시일반 하여 전세로 거처를 마련해 준 것이다. 일단 집이 마련되자 그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민가협 회원들이 그들을 찾아보았고 대학생들이 찾아보았으며 많은 이들이 그들을 찾아가 음식도 나누고 대화도 나누었다.

필자가 본 그들의 모습은 젊은이였다. 오랜 세월동안 감옥에 있다 보니 그 기간 동안 시간이 정지된 듯했다. 외모는 늙었는데 정서는 젊은이들의 정서였다. 그래서 오히려 대학생들과 잘 어울렸다.

 

1995년 쯤으로 기억된다. 필자가 대전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실무자로 있을 때 비전향장기수로 출소한 이를 고향인 경상도 감포의 친척들을 만나게 해준 일이 있다. 당시 그는 대전 밖을 나갈 수 없는 거주제한에 걸려 있었다. 그는 공작원으로 남파되어 어린 조카를 데리고 월북했다가 다시 조카와 함께 내려와서 체포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그는 감옥에 있었다. 감옥에 있는 그에게 국가에서는 전향을 강요하였고 가족까지 동원하여 전향공작을 펼쳤으며 그의 가족들은 연좌제에 걸려서 취직도 하지 못하고 무진 어려움 가운데 살고 있었다. 그들의 어려움이 원한이 되어 왕래 없이 지낸지 오래 되었다. 만나보고자 하여도 옛일이 두려워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 그는 생존해 있는 형수님이 보고 싶었다. 이제 사실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뵙고 싶었다. 그래서 필자가 주선해 주었는데 이곳 담당경찰과 그곳 담당경찰에게 이야기 했다. “당신들이 허락을 하건 안하건 갈 터인데 그렇게 되면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으니 오히려 당신들이 일을 성사시켜 달라”고 했다. 그래서 오히려 경찰들이 그의 가족들을 설득하여 경주의 모 호텔에서 회동할 수 있었다.

 

나는 김일성대학 교수출신의 남파 공작원으로 비전향 장기수 였던이와 여러 번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화내용은 주로 이데올로기와 종교문제 였다.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내가 궁금해서 물었고 종교에 대해서는 그가 주로 관심을 갖고 물었다. 당시 민주화 운동, 통일운동, 인권운동은 기독교를 빼 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독교인들의 활동이 지대하였던 것이 그의 기독교에 대한 시각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나의 질문과 그의 답변이다. 나는 그를 존중하는 가운데 솔직한 물음을 했기에 그의 대답도 솔직한 대답이었다고 생각한다.

 

문/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은 급격하게 자본주의화 되고 있는데 북조선의 체제는 붕괴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답/ “북조선의 체제가 붕괴하지 않는 이유는 북조선이 이념의 창조적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련의 해체에 대해서는 우리들도 크게 당황하고 있다.”

문/ “공산주의 사상을 고수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공산주의 사상이 이렇게 인생을 송두리 채 바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답/ “그냥 의리이지요.”(담담하게 웃으면서)

 

1993년 3월 19일, 비전향장기수 이인모노인의 송환 장면이 TV 화면을 채웠다. 34년을 옥살이하고 1988년 10월에 출감하여 병고와 싸우면서 살아왔다. 이제는 중병에 걸려서 거동조차 하지 못하는 가운데 김영삼 정부 초기의 이벤트성 행사로 송환되었다. 그 후 2000년 9.2 남북의 정상이 만난 6.15공동선언의 후속으로 비전향장기수 63명 송환되었다. 남북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젊은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긴 그들의 삶이다. 북한에서의 그들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