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373013
  • Today : 611
  • Yesterday : 874


'등나무' 아래 서면

2010.06.09 22:44

구인회 조회 수:1923

11.jpg 

 

등나무 아래 서면 
                   
                         홍해리

   

밤에 잠 깨어 등나무 아래 서면

흐느끼듯 흔들리는

보랏빛 등불이

여름밤을 밝히고,

하얀 여인들이 일어나

한밤중 잠 못 드는 피를 삭히며

옷을 벗고 또 벗는다


깨물어도 바숴지지 않을

혓바닥에서 부는 바람

살 밖으로 튀어나는 모래알을

한 알씩 한 알씩

입술에 박아놓고 있다.

끈끈하고 질긴 여름나무

불꽃을

온몸에 안고 있다.


그을음 없이 맨살로 타던

우리는

약쑥 냄새를 띄기도 하고

소금기 가신 들풀잎마다

바닷자락을 떠올리기도 한다.

죽고 또 죽는 남자

등은 그렇게 뻗어 올라서

여름을 압도하고

알몸으로 남는 칠월의 해일

바람만 공연히 떼미쳐 놓아

우리의 발밑까지 마르게 한다.


78.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1 file 구인회 2010.02.01 2126
150 떡하니 file 도도 2018.09.06 2126
149 당신을 따르겠습니다(금낭화) file 구인회 2007.04.27 2129
148 맥문동 麥門冬, Liriope platyphyllla [1] 구인회 2009.08.29 2130
147 만년청 萬年靑 file 구인회 2009.12.28 2130
146 절굿대(불재의 도깨비) file 구인회 2005.09.26 2131
145 마른잎 사이로 수선화도....... file 도도 2009.03.13 2131
144 황혼의 거처 구인회 2009.10.15 2131